1. 사변의 노래
▲ 김용필 소설가
그녀는 이야포 해변을 걷고 있었다. 몽돌해변이 유난히 고요하다. 어디선가 은은한 노래가 바람에 실려온다. 사변에 굽이치며 일렁이는 파도가 금각의 선율을 튕기는 음향이었다.
안도의 이야포 두륵여에서 들려오는 슬픈 원혼의 노래였다. 그녀는 몽돌해변을 걷다가 두륵여 바위에 걸터앉는다. 그리고 먼바다를 향하여 깊은 시름에 젖는다. 갑자기 바닷물이 검게 물든다. 한 무더기 검은 물체가 바다 밑으로 흐른다.
자세히 보니 물 밑에서 이동하는 멸치 떼였다. 검은 멸치 떼는 금각만 쪽으로 흘러간다. 그녀는 며칠째 안도의 해변을 둘러보며 여.초에 얽힌 슬픈 이야길 회상한다. 기러기 섬, 안도는 천혜의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자아내는 천국이었다. 동고지 서고지 남고지 해변을 에워싼 금각엔 언제나 슬픈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물 위 세상과 수중 세상이 다른 여와 초의 부르는 이별의 슬픈 노래였다
안도는 여.초와 금.각의 풍경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금각은 육지와 바다가 맞닿은 선이다. 바다에서 해변 선을 금(線)이라고 하고 바위섬을 여(礪)라 부른다. 그리고 물속에 숨은 바위를 초(礁)라고 한다.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곳을 금각 또는 사변이라고 하고 금이 길게 뻗은 것을 해변이라고 한다. 금각의 아름다움은 사변은 여.초가 있는 바다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여수는 섬이 많은 도시다. 400여 개의 크고 작은 도서(島嶼) 중에 유인도가 50여개이고 나머진 무인도이다. 넓은 해역에 수많은 바위 섬과 암초가 산재해 있다. 특이한 것은 여수의 해변은 모래가 없는 청석 해변이다. 따라서 모래가 있는 해변을 사금이라고 하고 청석벽 해변을 배성금이라고 한다. 여수의 사변은 몇군데 모사금(세 모래 해변), 장사금(장석 모래 해변), 청석금(몽돌해변), 백사금(조개껍질 해변), 여석금(흙모래 해변)의 고유명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물 위에 드러난 바위 섬 여는 무수히 많다. 문여(門礪), 배다여, 후여, 육고여, 신여, 마당여, 거북여, 대룡여, 소룡여, 백여, 험여, 드륵여 등이다.
도서(島嶼)는 흙과 암석으로 된 섬인데 큰 섬을 도 라하고, 작은 섬을 서 라 한다. 여는 물위에 드러난 바위지만 초는 물속에 잠긴 암초이다. 그런데 여는 물밑에 사나운 암초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겉과 속이 다른 일체이신(一體二身) 이라고 한다. 바다에 나서면 여변에서 무수한 사고가 일어난다. 생각이 다른 일체이신 암초에 걸리는 사고이다.
2. 두륵여 학살사건
그녀는 두륵여 바위 섬에 앉아 슬픈 이야포 사건을 회상하고 있었다. 74년 전 이야포 해변에서 150여 명의 피난민이 죽었다. 그때 미원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삼촌이 죽었다. 어머닌 무사히 헤엄쳐서 살았다. 어머닌 부모님과 오빠가 죽은 그때의 악몽을 잊지 못하고 해마다 8월이면 이 해변을 찾아 그때 죽은 원혼들을 달래고 있었다. 그리고 미원은 안도뿐 아니라 여수 금오열도의 섬들을 돌아다니면 희미한 살인의 흔적을 더듬고 다녔다.
그녀는 멸치 떼가 지나간 이야포 두륵여에서 해변을 맴도는 유혼을 위하여 슬픈 장송을 부르고 있었다. 안도의 이야포 몽돌해변과 백금만 해역은 멸치잡이 명소였다. 낭장막 어장을 설치하고 멸치가 유입되면 그물을 끌어당기며 어야, 어야 합창 소리가 동고지, 서고지, 남고지에서 울려 퍼진다.
1950년 8월 3일 이 아름다운 섬, 그리고 금오열도에서 무슨 사건이 있었을까. 미군 폭격기가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이 있었다. 상상만 해도 지긋지긋한 참상이었다. 하늘에서 내리퍼붓는 기관총탄에 많은 사람이 비명사 하였다. 미군 폭격기에서 무차별 가하는 사격으로 150여 명의 민간인을 학살하였다. 왜 그랬을까, 무슨 이유일까, 그리고 왜 말을 못 했을까, 그 이유를 알고 싶어 그녀는 이 해변을 찾는다. 이제야 그녀는 드륵여 이야기를 꺼낸다.
드륵이란 말은 스드륵하게 많다 란 뜻인데 안도의 이야포엔 아름다운 바위섬 여가 많다. 그중에 간출여는 이야포의 간문이다. 그녀는 가문에 앉아 누군가에게 이야길 하였다. 그녀 옆에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가마구지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1950년 8월 3일, 한국 전쟁이 일어나 북괴는 낙동강 전선에서 국군과 교전하고 있었다. 북에서 넘어온 피난민이 부산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좁은 부산에서 피난민을 다 수용할 수가 없어서 남해안 각 섬으로 분산하라는 미군 명령이 떨어졌다. 부산에서 250명의 피난민을 실은 배가 제주도로 향하던 중에 여수 안도의 이야포 항에 잠시 정박하여 식수를 구하고 있었다. 때마침 멸치 떼가 금오열도에 몰려들어서 인근 섬의 멸치잡이 150 여척의 어선이 안도에서 멸치를 잡고 있었다.
이때 난데없이 미군 정찰기가 날아와서 제주로 가다가 정박한 피난선에 무차별 공중 기관총 사격을 가하였다. 배 안에 탄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피난민들은 배에서 뛰어내렸다가 대부분 죽임을 당하였고 일부는 육지로 도망을 갔다. 그리고 배는 불길에 잠겨 타다가 물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250여 명의 피난민들은 거의 죽고 소수만이 살았다. 불행은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피난선을 공격한 미국 폭격기는 인근 바다에서 멸치잡이하던 어선에 기관총을 난사하였다. 조준하여 가하는 기관총에 많은 어부가 사살되었다. 그리고 폭격은 이야포 뿐 아니라 횡간도, 나발도, 개도, 돌산도에서 일어났고 순천만 여자도를 강타하였다. 이곳 섬 주민 150여 명도 미군 총탄에 죽임을 당했다.
왜 미군 포격기가 피난선에 사격을 가했을까? 왜 멸치잡이 어선에 총탄을 퍼부었을까? 확실한 진상은 모르지만 대략 전하는 이야긴 그 피난민 선에 북괴군 소대 병력이 숨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정보를 얻은 미군이 피난선과 민간인 선박에 사격을 가하였다. 그러나 미군은 일체 함구를 해버렸다. 왜 전장이 아닌 평화로운 남해에서 민간인을 공격했을까.
그녀가 알아본 결과는 미공군 F80 스타기였다.
1950년 8월 인민군 6사단이 전남도를 점령하고 순천, 광양을 거쳐 하동으로 들어가서 낙동강 전선군에 합류하려는 작전이었다. 북괴군이 배를 타고 부산으로 진격하려고 작전을 펴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남해안엔 섬으로 분산되는 피난선들이 들이 차 있었다. 북괴군은 이것을 이용했다. 북괴군 6사단이 부산으로 가기 위하여 진주로 진입하고 일부는 여수에서 배를 타고 가는 작전이었다. 미군이 이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해안 폭격이 순천만과 가막만에서 일어났다. 안도 폭격, 횡간도 폭격, 돌산도 폭격, 여자도 폭격 개도 폭격으로 피난민과 섬 어민들이 많이 죽었다.
폭격이 끝난 후 여수 경찰들이 사태 수습차 나섰다. 이야포에 와서 시신을 암매장하고 바다에 유기하였다. 이것으로 안도의 이야포 두륵여 민간인 학살은 비밀에 묻혀버렸다. 그런데 비밀은 없었다. 비밀과 묻혀있던 사건이 밝혀져서 여수시가 주선하여 그들의 유령비를 세우고 추모했지만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녀가 안도에 온 것은 그것을 밝히려는 출현이었다. 어머니는 그때의 비극을 딸에게 이야기하였다.
이야포 몽돌해변을 걷다 보면 남고지 간출여(두륵여)가 보인다. 두륵여 참사 현장이다. 언제나 두륵여엔 가마구지 떼들이 유령인양 놀고 있었다. 사람이 가도 두려워하지 않는 가마구지였다. 그녀는 녀석들 옆에 앉아 이별의 세레나데를 부르고 있었다. 기어이 내막을 규명하여 억울한 영혼들의 한을 풀어주리라. 오늘도 그녀는 그런 생각으로 두륵여에 앉아 있었다.
바다에 떠 있는 바위섬 여는 새들의 쉼터였다. 길잃은 새들이기도 하고 먼 길 비상에 지친 철새들이기도 하였다. 두륵여 바위 섬에 앉은 가마구지는 그들의 일종일 것이다.
3. 돈 주고도 못 사는 안도 멸치(낭장망 어장)
안도 멸치는 돈 주고도 못 산다. 그녀는 백금만 가마에서 멸치를 삶고 있었다. 멸치 하면 여수 멸치를 선호한다. 그중에서 안도 멸치가 최고의 명품이다. 여수 금오열도 두라도와 황간도, 안도는 멸치의 본 고장이다. 이곳 여수 멸치의 진미는 독특한 낭장망 어장으로 잡는다는 것이다. 멸치잡이는 대개 거대 활선 두 척이 그물이 느리고 휘몰아 싸잡이 하는 것이다. 대량을 잡은 멸치를 즉석에서 삶아 전기로로 인공 건조시켜 급조한다. 그러나 여수 멸치는 기계 가공이 아니고 낭장망으로 잡은 멸치를 해변 가마에서 삶아 몽돌 발에 말린 수공업 멸치이기 때문에 청결하고 맛이 좋다.
여수 가막만 바다는 해변 굴곡이 많아 물고기 서식과 생육에 좋은 기후 환경을 가지고 있어서 물고기가 많이 모여든다. 이곳에선 낭장망으로 멸치를 잡는데 어장이 많아서 수확량도 많았다. 멸치는 금각만에 모여드는 습성이 있다. 금각만이란 소뿔처럼 두 뿔이 감싼 해변을 말한다. 금각만 입구에 낭장망을 치고 몰려드는 멸치를 한꺼번에 잡을 수가 있다. 안도의 백사금은 몽골 해변이어서 물고기 서식이 좋은 곳이다.
그녀는 해변 가마에서 멸치를 삶다 말고 이야포 해변을 걷고 있었다. 쓸쓸하게 걷는 여인의 뒷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한참 두륵여에 앉아 있던 그녀는 발길이 바빠진다. 멸치 배가 도착하였다. 가마에 불을 지피기 때문에 백금만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부턴가 안도에 와서 명품 멸치를 만드는 장인이 되었다.
*금각만(金各灣) : 소의 두 뿔처럼 에워싼 안도의 아름다운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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