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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필/감성여행3...여수의 추억), “그 사람이 보고 싶다”

기사입력 2022-03-28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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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의 추억. 그 사람이 보고 싶다.
 

김용필 소설가

이별의 슬픔이 이렇게 아풀 줄이야. 그녀가 그립고 보고 싶어서 미칠 것만 같다. 그녀의 고운 목소리 노랫가락이 가슴을 후빈다.

추억을 찾아 푸른 물결 넘실대는 남해의 아름다운 섬섬섬, 물빛 고운 여수에 와서 보일 듯 말듯, 들릴 듯 말듯 아련한 얼굴과 고운 소리로 어렴풋이 다가와서 그려지는 환상적인 자태, 스마트한 몸매에 심성 고운 그녀가 보고 싶다.

 

여수에 가면 그리운 그 사람을 꼭 만날 것만 같다. 너무나 오랜 세월 떠나 살아서 그때의 사랑과 낭만서린 추억들이 거의 사라졌지만 아련한 기억 속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그리움이 바람처럼 불어오는 그곳에 갈 수 없었던 지난 세월이 한탄스러웠다. 자꾸만 기억은 잊혀져 가는데 그나마 아름다운 추억의 잔상들이 살아나서 그리움으로 애태운다. 고향 잃은 망향자의 슬픈 고뇌였다.
 

부용산 오릿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피어나지 못 한 채 시들어버린.... 그 노래가 죄목이었다. 순천 사범학교 교사였던 돌산출신 박동근 시인이 여.순사건의 불온한 사고로 고향을 떠났다가 돌아와서 애타게 연인을 찾는다. 1948년, 신월리 14연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그때 반란군 옆에 서 있었다는 이유, 사람들과 동생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를 썼다는 이유로 진압군은 무조건 고향을 떠나라고 하였다.

그래서 조국을 떠났다. 그리고 70여 년간 외로운 지구촌을 떠돌며 무국적 나그네로 살았다. 가고픈 고향, 그리운 사람들이 보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경계인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여수 해양엑스포 때 뜻있는 독지가가 고향을 떠난 사람들을 모두 고향으로 불렀다. 유색 분자라고 낙인찍혀 여수를 떠난 사람들이 돌아왔다. 가해자란 죄의식 때문에 두려웠는데 피해자의 용서와 화해로 고향에서 돌아왔는데 가해자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왜 70년이 지난 지금 왔느냐고 물었다. 나가라고 해서 나갔고, 돌아오지 말라고 해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잊었고 내게도 아무런 죄가 없었다. 떠날 이유도 돌아오지 못할 이유도 없었는데 혼자 조마린 양심으로 70년을 보냈다. 고향 사람들이 반갑게 맞아주어서 얼마나 고맙고 감격스러웠는지 모른다. 지난 날 많고 많은 추억과 사연들이 물결쳐온다. 그립고 보고픈 사람들은 거의 다 죽고 남은 자들은 잘 살고 있었다. 그런데 진정 내가 그리고 보고픈 사람은 없었다.
 

고향을 찾은 환상은 잠시, 화가 난 것은 덧없는 세월을 맥없이 떠돌았다는 것이다. 나를 고향에서 나가라고 했던 자는 누구인가? 그 이유를 속 시원히 말해주면 좋겠다. ‘죽일거야. 살고 싶으면 조국을 떠나라.’ 누군지 모른 진압군이 총칼을 들이대고 이른 말이다. 무서워서 떠났다. 미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조국과 고향을 떠나 돌아오지 못하고 70년을 무국적으로 떠돌던 세월이 한탄스럽다. .......박동근 시인의 아픈 절규였다.
 

사랑하는 그녀의 손을 놓고 여수를 떠났던 시인이 고향에 돌아와서 사랑하는 그녀를 찾아 섬과 바다를 헤매고 다녔다. 환상적인 바다와 섬, 여수는 그때나 지금이나 파라다이스였다. 그러나 세월은 흔적뿐 그녀는 실체 없는 그리움이었다. 그러나 추억을 더듬으며 바다와 섬을 돌아다녔다.
 

오동도의 빨간 동백이 진초록 잎사귀 사이에서 얼굴을 내민다. 뚝방을 거닐다가 해상 케이블카를 타고 돌산에 이른다. 해파랑길을 따라가는데 고향 무술 목이 낯설다. 14살 소년은 일본 유학을 떠나고 향일암 기도처에서 그녀는 나를 위하여 기원을 하였다. 잠시 금호도 비렁길을 걸으며 그녀를 떠올린다. 답답하다. 여객선을 타고 거문도로 떠난다. 신지꺼 인어 공주와 백도의 선녀가 반갑게 맞아준다. 그녀 소식을 물었다. 안타까워라. 어쩜 좋아, 좀 일찍 오지 그랬어요. 그녀가 왔다가 갔어요. 어디로 간다고 했나요? 그건 물라요.
 

조발도 일출을 맞으며 와온 해변에서 석양을 등지고 걷던 여인은 여자島 로 사라졌단다. 그리고 그 여인은 소리도 등대 아래서 오지 않은 사람을 기다리다가 떠났단다. 그리운 여수, 참으로 보고픈 것들과 추억되는 곳을 돌아보아도 그녀는 없었다. ‘돈 자랑 말고 사람 잘 남을 자랑하라.’ 아버지 말씀이었다. ‘가라면 가야지, 어쩔수 없잖니.’어머니의 말씀이었다.
 

이순신대교 시발 고양이섬 묘도에서 정유재란 종말의 노량해전을 본다. 황금에 눈멀어 독에 갇힌 왜군의 퇴로를 열어주고 뇌물을 받은 명나라 유정 총사령관이 반항하는 권율과 진린에게 곤장을 치고 이순신과 등자룡 장군은 노량해전에서 거룩한 죽음을 맞았다. 전쟁은 끝나고 명나라로 돌아간 유정은 후금의 누루하치의 화살을 맞고 죽는다.
 


여수 밤바다, 구성진 노래를 들으며 낭만포차에서 서대회 장어탕에 소주를 마시고 소호의 해상테크 길을 걸으며 추억을 회상한다. 어디로 갔을까? 마지막 발길은 태어나서 유년 시절을 보냈던 돌산의 무술 목으로 다시 발길을 돌린다. 갯바람을 맞으며 그렇게 서 있던 그녀는 어느 날 불연 듯 사라졌단다. 경도의 그린 필드에서 공을 날리면 푸른 잔디 위에 그려보는 얼굴, 당신은 여수에 없는 사람이었다.

비로소 내가 환상을 좇고 다녔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모든 것이 홀가분하다. 여수의 추억, 아름다운 보석 같은 추억, 사랑하는 사람들, 잃어버린 세월 속에서 그나마 환상 같은 그리움은 남아 있었다. 아, 사랑하는 그대, 어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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