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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1-12-0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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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필/역사추적) 表忠(표충)의 고장 여수!...“적소의 밤”

기사입력 2021-08-29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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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 없는 역사는 역사가 아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만큼 기록이 없는 역사는 추적하여 기록의 역사로 남겨야 한다. 그만큼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사포의 기적은 조명 될 것이다.)

 

  . 삼일포의 기적(여수-남해 해저터널)
 

▲ 소설가 : (米岡) 김용필

소백산맥의 땅끝지맥 여수 삼일포 사포항에서 남해 섬을 바라보며 금빛 모래 포구에서 거북선을 만들던 배무시의 역사를 더듬어 본다. 사포는 남도의 땅끝 군사 요충지였는데 지금은 세계적인 화물을 산적하는 항구로 변신했다. 마치 예약이나 하듯이 사포의 배무시가 세계적인 항구로 우뚝 선 것은 수심이 5만 톤급 선박이 자유롭게 댈 수 있는 천혜의 지형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머잖아 이곳 한구미(신덕)에서 남해로 환상의 해저터널이 뚫릴 것이다. 그때 사포는 옛 명성을 되찾아 천추에 빛날 것이다. 원래 이곳 배무시는 고려때 병선을 만들던 선소이고 조선 땐 거북선을 만들던 조선소였다. 여수의 사포와 남해의 관음포 바다는 내륙으로 들어오는 왜구의 주행로였다. 따라서 호남으로 넘어오는 왜구를 무찌른 요새였다.
 

사포항은 5만 톤급 배들이 자유롭게 드나들어 광양제철의 물동량과 GS칼텍스(호남정유) 원유를 산적하고 이송하는 항구로 북국 항로를 개척한 세빙선의 모항지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다.
 

역사 속으로 숨어버린 여수 삼일포의 사포는 고려 때 우리나라 최초의 해군 사령부와 통일신라 남서부 수방사령부가 있었던 해군기지였다. (역사추적) 게다가 인근 한구미 포구 신덕은 이순신 장군이 최후 결전을 다짐하고 출항한 곳이다.
 

삼일포(사포)의 제석산은 진례산 성황신이 된 김총(金摠)이 구국 기원을 했던 제단이었다. 그리고 이곳 한구미는 불사이충의 지조를 지킨 두문동 72인 중 한 분인 공은(孔㒚) 선생이 유배 와서 지낸 곳이다. 여수 삼일포(낙포) 한구미는 왜구와 왜병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영웅들의 수군 전투사령부였다. 이곳은 원래 순천 땅이다. 삼일포의 모든 기록은 순천으로 매김 하였다. 기록 없는 역사는 사라져버린다. 삼일포(사포)역사는 기록이 없다. 그래서 추적으로 재발견하는 것이다. 그것이 후손의 몫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의 숨겨진 백서량 수군 전투 대가 있었고 이곳에서 최후 결전을 다짐하고 나간 이순신 장군은 남해 관음포 앞바다에서 전사했다. 삼일포 한구미는 고려말 정지 장군이 우리나라 최초의 해군 사령부를 만들에 남해를 오가며 왜구를 물리쳤던 곳이다. 그리고 공민왕 때 유 탁 장군이 섬진강을 이용하여 내륙으로 진격하는 왜구를 물리치고 승전가(동동가)를 불렀던 기지였다.

더 놀라운 것은 통일신라 서남방수방 사령부가 삼일포(사포와 한구미)에 있었다. 이곳에서 총사령관 견훤과 부장 김총과 박영규가 신라 정복을 논의 했던 곳이었다. 결국 견훤과 박영규는 왕건과 손을 잡았고 김총은 이곳에 남아 한을 달래며 성황신이 되었다. 이런 역사적인 사례로 보아 여수 삼일포 낙포는 표충의 고장이라 감히 자랑할 수 있다.

 

그러나 사포는 역사의 흔적마져 여수공단 광양제철 산업항에 묻혀버렸다. 대신 수만 톤의 유조선과 화물선이 드나드는 항구가 되었다. 사포의 추억은 이곳에서 구국일념으로 나라를 지켜온 명장들이 불세출의 영웅으로 명운을 불태웠던 대역사의 명당이다.

 

  .제석산은 성황신의 제단
 

삼일포 한구미의 제석산(祭釋山)은 제왕의 산이 아니고 하늘에 제사와 기원제를 지내던 산이다. 한구미에 사령부를 둔 장군들은 제석산에 올라 구국의 기도를 드렸다. 제석산의 유래(추적)는 진례산 성황신이 된 김총이 신라 서남부수방 사령부의 수장인 견훤의 부장으로 부임하여 망해버린 조국 태봉을 세우려고 제석산 호랑이 동굴 성황당에 들어가서 아버지와 부처님께 성황 기원제를 지낸 곳인데 훗날 진례산으로 옮겨 태봉 구국 성황제를 지내며 진례산 성황신이 되었다. 한구미 제석산에서 김총과 공은이 망해가는 나라의 복위를 기원하였다.
 

  .삼일포 제석산에서 김총은 목놓아 울부짖었다.
 

“아버지, 결코 소자는 잃어버린 태봉을 다시 세울 것입니다.” 김총은 상관인 견훤과 박영규와 손잡고 거사를 도모 했다. 그리고 사포와 한구미엔 고려 때 한국 최초의 해군 사령부가 섰던 곳으로 짐작된다. 정지 장군이 순천 도병사로 와서 이곳 한구미 삼일포와 남해 관음포를 오가며 왜구를 무찔렀다. 삼일포 백서량에서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은 노량해전에 출정하면서 조국의 미래를 기도하다.
 

“전하, 명나라를 믿지 못합니다. 소장은 기필코 마지막 결전으로 왜적을 무찔러 조선을 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출전했다가 거룩한 전사를 하였다.

 

  .여수 삼일포(낙포) 한구미는 고려의 충신 공은이 유배로 살던 적소(謫所)였다.
 

공은(孔㒚)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벼슬을 내놓고 은둔생활을 한 두문동 72 충신 중 한 분이다. 이성계의 요청에도 관직을 거부하자 남해(의금도)로 유배 보냈다가 신덕소치로 이배되어 살다가 한구미에서 정착을 하였다. 그는 이성계의 요청에도 끝내 거부했다. 공은을 구하려던 개성에서 날아온 3마리 기러기가 사포에서 떨어져 죽어 삼일포(낙포)가 되었다.
 

“한 여인이 두 지아비를 섬기지 못하듯이 한 신하는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나이다.”

“네 이놈, 넌 어느 나라 백성이냐? 넌 조선의 국왕의 땅에서 난 곡물을 먹고 살지 안느냐?”

“그렇다면 굶어주어야죠.” 공은은 조선 땅에서 난 곡물은 먹지 않고 해산물로 연명하다가 죽었다. 그 후 여수 삼일포(낙포)는 조선을 거부한 땅이라서 박해를 받았다. 그러나 역사의 흔적은 기록으로 남아 볼 수가 있었다.
 

삼일포 한구미에서 공은(孔㒚)은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고 한탄하였다.

“전하(우왕), 사라지는 고려를 어찌합니까, 소신은 죽음으로 고려 사직을 지킬 것을 맹약합니다.”

그가 죽던 날 개성에서 날아온 기러기가 3일 동안 울다가 떨어져 죽었다. 그곳이 낙포이며 삼일포라 하였다. 공은의 고산 실기에서 자신의 구구절절한 심정을 시구에 담았다. 그리고 사포의선녀와의 사이에 낳은 자손이 지금도 삼일포에 살고 있다.

 

  적소일일(謫所一日)

 

  亡國孤臣痛一躬 /豈憂此路海邊窮

  風波橈楫懷唐介 /獐霧橫頻感寇公

  谷鳥避羅飛野外 /池魚畏釣就溟中

  人生自古誰無死 /留取丹心照日紅
 

망국의 외로운 신하 이 한 몸 괴롭지만 /바닷가 땅 끝까지 왔음을 어찌 근심하랴

풍파 헤쳐 노를 저어 당개(唐介)를 따르고/ 짙은 안개 빗겨가 구공(寇公)을 생각하네.

산골 새는 그물을 피하여 들 밖을 자유로이 날고 /연못의 고기떼는 낚시가 두려워 깊은 데로 헤엄쳐 간다

인생이 예부터 죽지 않은 이 있던가/ 죽기를 각오한 충성심이 붉게 빛나네

그는 불사이충의 절개를 지킨 분으로 오흔인 참사와 차원부 집현전 학사와 더불어 순천(여수)에 유배와서 죽임을 당했다.

 

  .공은(孔㒚)은 누구인가?
 

공자의 54대 직손이다. 원나라 노국대장공주가 고려 공민왕과 혼인하여 고려로 올 때 수행 주무관으로 온 공소(孔昭)의 아들이다. 공소는 노국대장공주를 보필하다가 공주가 죽자 고려에 귀화하여(창원공씨) 평장사와 문화시중(정2품차관)의 벼슬을 얻는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할 때 세 아들 중에 큰아들 공여(孔呂)는 태종의 상장군이 되었고 둘째는 공은(孔㒚백량.고산)은 대제학 평장사로 두문동 72인이 되었고, 셋째 공부(孔俯)는 집현전 대제학이 되었다.

조선이 건국하고 형과 동생은 조선에 충성을 맹세하고 큰 벼슬을 얻었으나 공은은 조선건국을 부정하여 유배를 간다. 처음 유배 간 곳은 경상도 의금도 인데 태종의 간청을 거역하여 여수 벽서량으로 이배를 왔다. 그는 한구미 제석산 아래서 살다가 태종의 무사에게 살해당했다. 아들 공노는 아버지를 따라와서 이곳에서 살았다. 그리고 공은의 손자 공전은 찬판 벼슬을 했었고 공소의 10세손 공서린은 한성경비사령관을 지낸 대장군이었다.

 

  .정지 장군(1347-1391)은?
 

1374년(공민왕 23) 전라도안무사로 발탁되어 1377년(우왕 3) 예의판서(禮儀判書), 순천도병마사가 되어 순천 등지에 침입한 왜구를 연파한 공으로 이듬해 전라도순문사가 되었다. 1381년 남해의 해도원수(海島元帥)가 되었고 관음포와 백서량에서 왜구를 대파하여 1384년 문하평리(門下評理)에 임명되어 왜구의 소굴인 쓰시마(對馬島)와 이키(壹岐島)의 정벌을 준비하기도 하였다.
 

1388년 최영(崔瑩) 등을 중심으로 요동정벌이 추진되자 우군도통사 이성계(李成桂) 휘하에 예속되어 안주도도원수로 출전하였으나 이성계의 위화도회군 때 동참하였다.
 

  .유탁장군(1311-1371)은?
 

본관 고흥. 유청신의 손자, 원나라의 요청으로 출정한 장사성 토벌에 공을 세웠고, 흥왕사 난을 평정하여 공신 책록을 받았다. <장생포> 등의 가곡을 지어 악부에 전했다. 공민왕 즉위 전라도 순천만호가 되어 왜구의 침입을 막아냈다. 그 뒤 찬성사를 거쳐 1354년(공민왕 3)에 좌정승이 되었다. 1361년 홍건적의 난 때 왕을 호종했으며, 이듬해 좌정승을 제수받고 서북면 홍적방어제군도통사가 되었다. 1363년 흥왕사 난을 평정한 공로로 첨병보좌공신 1등에 책록되고 좌정승, 우정승을 거쳐 좌시중이 되었다.


  *이순신장군(1545-1598)은? :삼도수군 통제사

 

  . 여수 삼일포는 표충의 고장이다.
 

여수를 무대로 거듭난 표충의 장수들: 통일신라(김총. 견훤. 박영규.) 고려(공은, 오흔인. 차원부. 유탁장군, 정지장군). 조선(이순신,) 근세(여순사건 희생자) 이들이 공훈을 칭하여 여수를 표충의 고장이라고 부른다.
 

여수는 불사이충의 절개를 지킨 고려 두문동 72인인 공은과 오흔인, 차은부이 유배와서 순절한 곳이며 왜구와 왜병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 유탁장군. 정지장군의 공이 서린 곳이다. 삼일포라고 부르는 사포 한구미는 통일신라의 서남부수방군 사령부가 있었고 고례 때 최초의 해군 사령부가 있었고 조선땡 삼도구군 통제영이 있었던 곳이다. 김총과 견훤, 박영규가 고려를 건국을 모의한 그곳에서 김총은 진례산 성황신으로 모셔졌다. 우리는 사포의 9장수의 표충을 기리 받들 것이다.*
 

▲ 제석산(祭釋山 위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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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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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cmaca
    2021- 08- 30 삭제

    始原유교유입, 기자조선(始原유교) 마지막왕 기준의 후손이 삼한건설, 삼한(始原유교)의 영토에서 백제(마한).가야(변한).신라(진한)가 성립됨.@한국 유교 최고 제사장은 고종황제 후손인 황사손(이 원)임. 불교 Monkey 일본 항복후, 현재는 5,000만 유교도의 여러 단체가 있는데 최고 교육기구는 성균관대이며,문중별 종친회가 있고, 성균관도 석전대제로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임.

  • macmaca
    2021- 08- 30 삭제

    한나라때 공자님도제사,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성립,수천년전승.한국은殷후손 기자조선 기준왕의 서씨,한씨사용,三韓유교祭天의식. 국사에서 고려는 치국의道유교,수신의道불교.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 http://blog.daum.net/macmaca/3057 @무속은 은.주시대 始原유교의 하늘숭배,산천숭배,조상숭배, 주역(점)등에서 파생된 유교의 지류. 역사적 순서로 보면 황하문명에서 은.주시대의 시원유교[始原유교:공자님 이전 하느님(天)과 여러 神明을 숭배]에서, 한국 고조선의 기자조선으로 始原유교유입, 기자조선(始原유교)

  • macmaca
    2021- 08- 30 삭제

    그렇습니다. ​ 조상을 섬기는 제사는 유교가 공식적이고, 유교 경전에 그 절차와 예법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유교경전 예기에는 상고시대 조상신의 위치에서 그 혼이 하늘로 승천하시어 인간을 창조하신 최고신이신 하느님[天(하느님, 하늘(하느님)]하위신의 형태로 계절을 주관하시는 五帝가 계십니다. 유교는 하느님(天), 五帝, 地神, 山川神, 부엌신(火관련)숭배등 수천년 다신교 전통이 있어왔습니다. @한국은 세계사의 정설로,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국으로 수천년 이어진 나라임. 불교는 고구려 소수림왕때 외래종교 형태로 단순 포교되어, 줄곧 정규교육기관도 없이, 주변부 일부 신앙으로 이어지며 유교 밑에서 도교.불교가 혼합되어 이어짐. 단군신화는 고려 후기 중 일연이 국가에서 편찬한 정사인 삼국사기(유교사관)를 모방하여, 개인적으로 불교설화 형식으로 창작한 야사라는게 정설입니다. ​ 유교,공자.은,주시대始原유교때 하느님.조상신숭배.세계사로보면

  • macmaca
    2021- 08- 30 삭제

    @동아시아는 수천년 유교사회입니다. 공자님 이전의 始原유교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님 이전의 구약성서 시대에 해당됩니다. 하느님(天).神明,조상신 숭배가 유교의 큰 뿌리입니다. 유교는 국교로, 주변부 사상으로는 도가나, 음양가, 묵가사상등이 형성되었고, 법가사상은 이와는 다른 현실적인 사상이며, 국가의 통치에 필요한 방법이었습니다(진나라때 강성하고, 유교나 도교와 달리, 한나라때 율령이 반포되어 이후 동아시아에 유교와 별도의 성격으로 국가통치에 활용됨).@일부 지역에서 굿이나 푸닥거리라는 명칭으로 신령숭배 전통이 나타나도, 이를 무속신앙이라 하지는 마십시오. 불교라고도 하지 마십시오. 유교 경전 논어 팔일(八佾)에서는 공자님이전부터 섬겨온 아랫목 신(안방신), 부엌신등을 섬기는 전통도 수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전통적인 신명 섬기기에 대해서, 공자님도 오래된 관습으로, 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