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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2 오후 3:43:07 입력 뉴스 > 사설&칼럼

(김용필/여수기행)
“하멜의 여수생활은 행복했다”



  1. 내 조상은 네덜란드 인이다

 

소설가 : (米岡) 김용필
 여수 종포 해변 낭만의 포차 옆엔 하멜 가념관과 하멜등대를 볼 수 있다.

 

이곳은 352년 전 하멜 일행이 유배당해 살았던 해변이며 도망간 해변이었다. 낭만포차를 거니는 데 갑자기 친구 생각이 났다.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왔다. “난 아무래도 한국인이 아닌 것 같아. 내 피속에 네덜란드인의 피가 흐르는 것 같아.” “무슨 소리야?”

 

“날 봐, 내가 어디 한국인 같니, 큰 키에 이목구비가 서양인 같지 않냐고?” “웃기지마라. 네가 왜 네덜란드피를 가져?”“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농담으로 흘려들었다.

 

그런데 하멜 등대 앞에서 친구를 떠올렸다. 그는 이목구비가 서양인의 골격과 체구를 닮았다. 그는 생부모를 모르는데 어릴 때 그를 박씨 집에 양자로 보내고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이다. 그는 여수의 부잣집 박씨 가문에서 잘 자랐다.

 

젊어선 몰랐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태어났는데 아이들의 체격이 서양인 체격으로 자라는 것을 보고 자신의 뿌리와 피에 의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여수 종포구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의문의 본질이었다.

 

“틀림없어. 난 말이야. 하멜 표류단 중의 한사람이 조상인 것 같아.”

“허튼 소리마라.”

 

“너, 하멜 표류단 중에 얀 클라센을 아니?” 라며 하멜 선단의 행적을 캤던 이야길 하였다. 강진의 전라감영에 가서 알아보니 당시 하멜 일행이 강진에서 결혼하여 아이들 까지 둔 사람이 있고 여수에서도 한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끈질기게 네덜란드로 가서 하멜 표류기 속에 한국 생존자에 관한 기록을 조사를 했다는 것이다. 왜 그가 352년이나 지난 피의 흔적을 찾으려는 걸까?

 

  2. 제주도에 표류한 하멜 선단

 

1653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무역선이 대만에 화물을 풀고 일본 나가사키 데지마 무역관으로 가던 중에 태풍을 만나 표류하다가 제주도로 간신히 피신되었다. 68명의 선원과 해군이 타고 있었는데 28명이 죽고 36명이 구조 되었다.

 

제주목사 이원진은 괴물 같은 서양인을 불러놓고 추문해도 대화가 안 통해 묵묵부답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조정에 알렸더니 마침 조정에서 네덜란드인으로 조선에 귀화한 동인도 회사 직원 벨테브레이브(박연)를 보냈다.

 

그는 훈련도감의 무기제조 담당관이었다. 박연은 그들이 그리스도 포교원이 아니고 네덜란드 선원이라고 확인했다. 그러나 1년 동안 제주 감영에서 갖은 고초를 겪고 있는데 1654년 효종이 이들을 한양으로 불러 들여 북한산성 무기제조 창에서 조총을 연구하게 하였다.

 

마침 효종은 북벌을 기획하고 있어서 이들에게 서양 총포를 만들게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효종이 승하하면서 북벌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이들이 별 쓸모가 없어서 골치를 앓고 있었다.

 

조정은 1656년 영암의 전라 감영으로 유배를 보낸다. 그런데 한양에서 청나라 사신을 따라 탈출을 하려다가 잡혀 3명이 죽고 33명이 영암에 유배 와서 감영의 막일꾼으로 7년 동안 일했다.

 

전라감영은 이들을 먹여 살리는데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었다. 천민 이하로 노예처럼 일하다가 11명이 풍토병으로 사망하고 그해 기근이 들어서 순천부로 분리 이송 할 수밖에 없어서 좌수영(여수)에 12명, 순천부에 5명이 남원에 5명이 이송되었다.

 

순천 감영에 온 이들 22명은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좌수영 수사 이도빈은 이들이 불쌍하게 여겨서 감영의 일꾼으로 배불리 먹이며 자유롭게 살게 하였다. 이들의 하는 일은 좌수영 궁터에서 화살 줍는 일과 보초 서는 일을 하였다.

 

그런데 이도빈이 가고 이민박이 새 수사로 와선 식량만 축내는 짐승 같은 놈들이라고 모진 학대 을 하였다. 그동안 6명이 죽고 1년 만에 이민박이 떠나고 다시 새 수사로 정영이 와서 이들을 풀어 스스로 벌어먹게 하였다. 이들은 여수 종포구로 나가서 뱃일을 도우면서 민간인과 같이 살았다.

 

  3. 하멜의 여수 생활은 행복했다.

 

하멜이 순천과 여수에 온 이래 3년 반 동안 종포구에서 거주하면서 탈출할 궁리를 하였다. 어느 날 하멜 일행이 좌수영 본영 궁터에서 화살을 줍고 있었다. 그때 이도빈 수사가 지나가는데 하멜이 면담을 요청했다.

 

“수사님, 우릴 일본으로 가게 해주십시오.”

“일본으로 왜 가려는데?”

“나가사키에 저희 동인도 회사의 분사가 있습니다. 배만 마련해 주시면 말없이 떠날 것입니다. 그리고 자카르타로 가서 본국으로 갈 것입니다.”

“안타까운 사정은 알겠으나 일본으로 가려면 큰 배가 필요 할 텐데 내가 배를 마련해 줄 수는 없다.”

 

하멜 일행은 도망갈 배를 교섭하는데 힘을 쏟았다. 종포구에 김씨란 선주가 있었다. 하멜이 선주를 만났다.

 

“무역을 해볼 생각은 없는지요? 일본의 은과 한국의 목화를 바꾸는 무역을 하면 큰돈을 벌수 있습니다.”

“정말 돈을 많이 벌수 있단 말인가?”

“네. 내게 배를 내 주시면 무역을 하겠습니다. 자카르타에 있는 동인도 회사와 교역 도 할 수 있습니다.”

“글쎄,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 수사가 허락하면 돕겠네.”

 

그러나 수사가 허락하지 않았다. 하멜은 선주인 김씨 집을 자주 드나들면서 뱃일을 돕고 밥을 얻어먹었다. 그런데 김씨의 딸이 일행 중 제일 나이 어린 선원 얀 클라센을 좋아했다.

 

“클라센, 김씨 딸을 좋아하나?”하멜이 물었다.

“응, 좋아해.”

“그렇다면 배를 빌려달라고 해라.”

 

김선아와 클라센의 사랑이 무르익었다. 어느 날 밤 클라센은 김선아의 도움으로 김씨의 배를 훔친다. 그리고 8명의 선원이 여수를 떠나려는데 클라센이 말했다.

 

“하멜, 나는 안 간다.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갈수가 없어.”

“너, 여기 있다간 죽어.”

“그래도 안 간다. 난 그녀를 떠날 수가 없어.”

 

하멜은 7명의 선원을 태우고 여수를 떠났다. 이 사실을 알고 김씨는 딸을 호되게 나무랐다. 아버지의 역정이 두려워서 김선아는 클라센을 데리고 종포구를 떠났다.

 

  4. 하멜 표류기는 조선의 기록이었다

 

▲ 여수시 종화동 해양공원

   하멜 동상 제막식에 참석한 네델란드 아이젤스 호르큼 시장(2007)

 

여수 좌수영에서 자유롭게 살던 16명 중에 8명이 일본으로 탈출을 하였다. 일본으로 간 8명은 나가사키 데지마에 있는 동인도 회사 로 이송되었다. 그러나 막부정부는 이들이 기독교를 전파하러 온 교인인 중 알고 철저히 감시했다.

 

마침내 본국과 연락하여 이들을 자카르타로 보낸다. 그리고 네덜란드의 요청으로 일본의 막부정부는 조선에 남은 8명을 귀환하라는 내용을 전문을 보낸다. 좌수영에서도 이들이 도망간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만큼 여수에서 하멜 단은 자유의 몸으로 행복한 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수사 정영은 당장 좌천을 당한다. 마침내 조선은 나머지 7명을 일본으로 보낸다. 그러나 얀 클라센은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하멜은 조선에 13년 있는 동안 동양의 문물을 조선의 풍습과 사회상을 기록하여 하멜 표류기란 여행기를 남겼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쓴 것이 아니고 친구가 그에게 들은 아야길 쓴 것이다.

 

직접 목격한 기록이 아니고 들려준 이야기이고 그들이 어린 군인과 선원이었기에 조선을 보는 정확한 안목이 없어서 대충의 기록을 남겼지만 하멜 표류기는 대부분 조선에 관한 기록이었다.

 

여수에서 결혼한 얀 클라센은 어딘가에 숨어 살면서 자손을 번식시켰다. 그리고 강진에서 하멜단과 교제하여 태어난 아이들이 남씨란 성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거 떠난 352년 후 과연 그들의 유전 인자가 한국에서 어떻게 변형 되었을까. 하멜이 여수를 떠날 때 김씨 선주와 약속은 목화 무역인데 그 후 여수에선 목화를 많이 심어 목화밭이 많았다. 네덜란드는 코레아란 무역선을 조선에 보냈으나 조선은 냉혹하게 거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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