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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30 오후 10:58:29 입력 뉴스 > 사설&칼럼

(김용필/문명기행) “스페인 광장”
(알함브라 궁전에서 플라밍고 춤을 춘다)



▲ 여수출신 소설가 김용필.
 스페인이 있는 곳에 스페인 광장이 있다. 역사는 인생이고 문화이다.

 

지혜로운 지도자는 역사를 배우고 창조하고 계승하고 교육하여 빛내지만 어리석은 지도자는 역사를 왜곡하고 없애버린다.

 

되돌아보지 못한 역사는 역사가 아니다.

 

문화의 충돌은 역사를 단절하는 불행을 낳지만 문화의 융합은 질 높은 문화를 탄생한다. 스페인 광장에서 한제국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그 역사가 변하는 양상과 권력의 환상과 대제국의 흥망사를 바라본다. 식민지 스페인 광장에 황금기의 스페인과 쇠퇴해버린 스페인을 돌아본다.

 

16세기부터 세계를 지배한 스페인은 어디로 갔는가. 그 제국은 사라졌지만 찬란한 역사 문화 유물과 유적을 남겼다. 스페인 광장에서 이슬람과 가톨릭 문화의 충돌을 보았고 이슬람문화의 오묘하고 찬란한 예술성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스페인의 번성은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독립하면서 탄생하였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위를 계승하므로 서 유럽사는 혈연으로 구성된 제국을 이루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합스부르크 왕가는 오스트리아 왕가와 스페인 왕가로 분리되었다.

 

대제국 스페인은 이사벨 여왕이 탄생시켰다. 이베리아 반도는 포투칼, 카스티아, 아라곤, 그라나다로 분리된 왕국이었다. 카스티아의 엘린케 4세가 왕자가 없이 1474년에 죽자 공주인 이사벨이 왕권 다툼에서 승리하여 스스로 왕 자청하고 아라곤의 펠리페왕의 왕자 페르디난트와 결혼을 하여 강력한 스페인 통일을 이루어냈다.

 

결혼한 페르디난트와 이사벨 1세는 분열되었던 스페인 왕국을 하나로 합쳤다. 통일 스페인은 카를로스 1세와 이사벨 여왕는 무어 족이 통치한 그라나다의 이슬람 국가와 전쟁으로 승리하므로 대제국 스페인을 건설하였다.

 

이사벨과 카를로스 1세는 그라나다에서 이슬람을 추방하고 부패한 교단을 정화하고 대학을 세우고 예술가를 양설하고 사관학교를 만들어 국력을 튼튼히 한 후 해양으로 진출하여 부를 창출하였다.

 

카를로스 1세와 이사벨 여왕의 스페인을 황금의 제국으로 만든 것은 이사벨 여왕의 혜안이었다. 콜럼버스와 약속이 스페인의 부를 이루어 냈다.

 

“여왕폐하, 내가 항해를 할수 있는 배3척만 만들어준다면 스페인을 부자로 만들어주겠습니다.” 콜럼버스의 간청에 카롤로스 대제는 미친놈이라고 욕설을 퍼부었지만 이사벨여왕은 조용히 그를 불렀다.

 

“그 말의 책임을 질수 있느냐?”

“네 폐하. 신대륙을 발견하여 드리겠습니다.”

 

이사벨 여왕은 콜럼버스에게 자신의 보석 장신구를 팔아서 배 3척을 만들어주었다.

“그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

 

마침내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하여 스페인을 황금대국으로 만들었다. 콜럼버스와 이사벨 왕의 약속이 지켜졌다.

 

스페인의 황제가 된 그녀는 1478년에 부패한 교단을 정화하였다. 악명 높은 스페인 교단을 심문하여 종교적 자판을 하였다. 이단 심문은 기존의 교리를 따르지 않는 가톨릭 신자들을 가차 없이 처단하였다. 그리고 교리를 따르지 않는 이슬람과 유대 교도들을 추방하였다.

 

1482년 스페인 왕국은 이슬람의 무어인들과 전쟁에 돌입했고, 1492년 콜럼버스가 신세계를 발견한 그해 그라나다에서 버티던 마지막 무어인들을 아프리카(모나코)로 내쫓았다.

 

1492년 스페인은 무어인들을 몰아내고 눈엣가시인 유대인을 탄압하고 가톨릭에 거부하는 유대인들은 중동과 북아프리카로 추방하였다.

 

콜럼버스의 신세계 탐험으로 식민 영토를 확장하고 가톨릭을 전파는 물론 황금부국을 창출하였다. 페르디난트 왕과 이사벨 여왕은 교육과 예술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며, 재임 기간 동안 두 분야의 발전에 힘썼다.

(비로소 여행은 아랍 에미리트 두바이를 시작으로 스페인 전역과 포르투갈로 이어진다.)

 

-인생은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사는 대로 생각한다.-

 

  1. 아랍 에미리트

 

사막의 도시, 사람이 살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사막에 낙원을 만들어 외계인처럼 부를 누리며 행복하게 사는 두바인의 생활에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의 절정을 본다. 어떻게 사막에 사람이 살고 식물을 키우고 꽃을 피우며 거대한 마천루를 만들어 살까,

 

2019년 6.12일 인천에서 에티하트 항공편으로 밤 12시에 출발하여 11시간 만에 다음날 10시에 아랍 에미리트의 아부다비 공항에 도착하였다. 열기가 45도 화끈하다. 그곳은 인공의 도시였다.

 

  *.두바이

 

사막에 집을 짓고 바다에 인공 섬을 만들어 세계 최고의 부를 자랑하는 두바이는 외계인이 사는 나라 같았다. 석유란 돈이 만들어낸 두바이는 빌딩숲이 하늘을 찌른다. 왜 건물이 하늘로 솟는가? 알고 봤더니 인프라가 갖추어진 땅이 비싸기 때문에 빌딩은 하늘로 솟는다.

 

사막에 어떻게 건물이 설까? 염려했는데 사막 속 30미터아래 강한 암반이 깔려 있어서 암반위에 집을 세운다.

 

두바이의 빌딩의 평균높이가 200미터란다. 물은 바닷물을 정수하여 먹고 정원을 가꾼다. 사막의 도시 두바이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사막의 도로엔 가로수가 무성하다. 사막의 전통나무 씨더트리와 야자 대추나무 가로가 우거진 두바이에서 하루 일정을 보낸다. 두바이는 진주조개를 캐던 해변이었다. 이 해변에 거대한 인공 도시가 형성 되었다. 아무튼 두바이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초고층 빌딩의 도시다.

 

  *.부르크 칼리파 163층 건물

 

우리나라 삼성이 건립한 세계 최고의 828미터의 빌딩인 ‘부르크 칼리파’의 조망은 이 도시의 절경을 내려다 볼 수 있다. 163층인데 124층까지 엘리베이터가 움직인다. 이 거릴 오르는 시간이 50여초이다. 108층 이하는 주거 시설이다. 멀리 돛단배 모양의 7성급 버즈알아랍 호텔과 쥬메리아비티가 한눈에 보인다.

 

  *.바다의 인공섬

 

바다를 바윗돌로 10km2 해변의 뚝을 막아 바나나를 상징하는 부채 살 같은 인공 섬은 육지에서 지하터널을 타고 들어가거나 모노레일을 타고 10키로 미터를 들어서면 인공섬 안에 구멍 뚫린 두바이 프레임 신시가지에 한눈에 보이고 아틀란티스 호텔이 육중한 몸체를 드러낸다. 인공 섬은 부호들의 주거단지다. 물과 주거지로 수로로 연결되어 있다.

 

  *.두바이 분수 쇼

 

두바이 몰 안에 위치하여 두바이의 로맨틱한 대표 관광 상품인 분수 쇼는 고층빌딩의 야경과 어우러져 환상적이다. 라스베가스. 바르셀로나 분수 쇼 와 더불어 세계 3대 분수 쇼는 아름다운 음악에 맞추어 3분 동안 연출되는 데 주변경관에 어울러져 너무나 환상적이다.

 

  *.두바이 몰.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쇼핑몰로 올드타운 아일랜드 타운하우스와 아파트 밀집 중심 산업 지역에 건설된 내부 엘리베이터가 95개, 에스컬레이터가 150개에 이르며 주차장은 1만 4천 대의 차량을 동시 수용할 수 있다. 내부에는 세계 최대의 실내 아쿠아리움, 실내 금시장, 실내 아이스 링크와 호텔이 들어섰다.

 

문제는 두바이의 고층 빌딩은 세계기업들이 세를 내어 사무실 부족현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2. 스페인

 

아랍 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비행길 타고 6.30분 걸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한다.

 

  (1)바르셀로나

 

스페인 제1의 도시. 인구는 500만. 200년을 게르만 지배, 800년을 이슬람 지배, 1400년대에 카탈로니아, 안달로 시아, 그라나다가 단일국가로 통일하였다. 유럽의 먹거리 40%를 제공하는 도시다, 번화가는 람블라스 거리, 가우디의 성가족 성당. 구웰공원. 카사밀라의 대저택이 볼만하다. 스페인 민족은 가스피아족, 에스파냐족, 까딸리나 족이 번성했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이지만 스페인과 전혀 다른 언어, 문자, 풍습을 쓰고 있다. 스페인은 오랫동안 이슬람 왕국이 있었기 때문에 이슬람 문화와 카톨릭 문화가 함께 발전한 나라이다. 다라서 두 예술을 찬양하는 예술가가 많다. 화가로 미로, 달리, 피카소 등이다

 

이사벨 여왕이 최초로 신대륙 탐험을 마치고 돌아온 콜럼버스를 접견한 도시이다. 피카소의 고향은 원래 스페인 남부 지중해 해안 도시 말라가이지만 초기에 바르셀로나에서 활동했기에 2,500여 점에 달하는 그의 작품들이 피카소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바르셀로나는 건축가 가우디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성가족 성당등 바르셀로나 곳곳에 그의 독특한 건축물을 볼 수 있거든요. 가우디 아파트, 구엘 궁전과 공원, 갈베트 저택, 그리고 아직도 미완성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등이다.

 

라 페드레라라고도 불리는 가우디의 카사밀라 아파트는 언뜻 보면 디즈니랜드의 요술의 집 같아요. 비대칭의 불안한 구조와 현란하고 과감한 장식이 구웰공원에 있다.

 

성가족 성당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고딕 양식이 뾰족하게 하늘로 솟은 첨탑이 열두 개가 있으며 높이는 170미터나 된다. 중앙에 있는 돔의 조각도 매우 특이하지요. 1882년에 만들기 시작했지만 가우디가 1926년 기차 사고로 죽을 때까지 완성하지 못해 지금도 공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몬세라도

 

*산티아고 성당 :바로셀로나 첫기행은 기암절벽에 세워진 몬세라도 수도원 이다. 괴암산상에 지어진 산티아고 성당은 필라드 성당과 함께 순례지다. 해발 1200미터의 톱니 같은 산상에 베네딕토 수도원과 검은 성모마리아가 유명한 바실리카 성당이 있다. 동굴 속에 숨겨진 마리아 상은 천 년 전에 양치기소년에 의해서 빛을 보게 되었고 이고 성당은 노래하는 몬세라도 소년합창단이 유명하다.

 

  *성가족 성당(예수. 마리아. 요셉)

 

사그라다는 파밀리아를 가리키는 말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가우디가 40년간 지은 성당인데 아직도 미완의 성당으로 2026년에 완공 예정이다.

 

건축양식이 없이 자연 그대로의 곡선을 이용한 건축술. 동쪽 문은 탄생의 문으로 예수의 유소년 시절을 조각하였고 서쪽의 수난의 문은 십자가에 못 박힌 고난의 세월을 그렸다(수비라체 작품) 남쪽의 영광의 문은 부활의 영광을 그렀고 북쪽의 순환의 문은 용서의 문으로 예수와 유다의 키스 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이 성당은 1882년 착공해 130여 년째인 2019년 올해도 여전히 공사 중이고 언제 완공될 지 기약도 없다.

 

스페인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이 코르네트(1852 ~ 1926)가 1883년 성가족 교회 공사 총 감독을 맡았다. 가우디는 일생 결혼하지 않고 말년까지 교회에서 먹고 자며 일에 빠져 살다가 성가족 성당 바로 앞길에서 전차에 치여 생을 마감했다.

 

그의 작품은 성가족 교회를 비롯한 7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돼 있는다 모든 작품이 구불구불한 곡선을 이용한 작품들이다. 그의 건축물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가우디의 건축물에는 설계도가 없다.

 

직선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자연의 상태다. 가우디의 건축물에는 아치형 다리가 거꾸로 매달린 듯한 형태가 보인다. 가우디는 긴 와이어 로프의 마디마디에 모래자루를 달아 옆으로 당겨 그 견디는 힘의 구조를 계산했다.

 

  *.구웰공원

 

가우디가 자연 상태 그대로 만든 고급전원주택지, 구웰이 조성 했으나 미분양 된 것을 가우디의 친구 구웰이 복원하여 생태 학습장으로 황용하고 있다.

 

  *스페인 광장

 

스페인이 지배한 식민지나 도시엔 스페인 광장이 있다. 이곳의 광장은 스페인 왕권의 상징적인 존재로 우뚝 서다.

 

  (2)발렌시아

 

스페인의 발렌시아는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에 이어 3대도시, 지중해를 끼고 아름다운 해변이 발달된 발렌시아 주의 수도이다. 고딕 양식의 건물들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도시다. 발렌시아 출신의 건축가 산티아노 칼라트라바가 설계한 대규모의 미래형 예술 과학 도시이다.

 

광활한 농경지에서 지중해의 바람을 맞으며 재배된 오렌지와 올리브가 유명하여 세계로 수출되고 자연스럽게 무역 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음식인 파에야(볶은 밥)가 처음 만들어낸. 도시 매년 3월에 스페인의 3대 축제 중 하나인 불 축제, ‘라스 파야스(Las Fallas)’에서 열린다.

 

  *금지된 성서 에녹스

 

(에녹스) 에티오피아어와 슬라브어로 작성된 두 권의 책인데 신의 부름을 받아 천계를 방문하며 보고 들은 것들을 정리한 일종의 여행기

천계의 구성 요소와 형태 각 직급별 천사의 호칭과 역할등과 일곱 하늘, 지옥, 심판, 천문, 역학, 대홍수 예언과 구세주의 출현 예언등 위전 중 내용을 엮은 책이다.

 

총 108장의 에녹스는 에피오피아어로 신학자 R.H 찰스가 정리 했는데 총 다섯 편으로 구성했다.

 

1~36장은 노아서의 내용들이 삽입되어져 있고 37~71장까지는 유대의 여러 가지 사상을 비유하고 있으며 71~82장에서 천계의 이야기를 83~90장은 환상에 대해 91~104장은 묵시적 예언이 적혀 있다. 105~108장은 노아서에 관한 단편들이 묵시적 예언으로 맞춰져 있다. 그것을 인용한 책이 단테의 신곡이다.

 

  (3)그라나다(Granada)

 

그라나다는 집시의 피가 흐르는 땅으로 무어인들을 내 쫒은 후 이사벨 여왕이 사랑한 땅이다.

 

시에라네바다 산맥 북서쪽으로 헤닐 강을 끼고 발달한 해발 689m고도

이 도시이다. 스페인어로 '그라나다'는 석류이다. 이 지방에는 석류가 무척 많고 나고 있다. 또한 이 도시가 무어인에게 정복당했을 때의 이름인 카르나타(가르나타) '이방인들의 언덕'이다. 무어인이 세운 그라나다 왕국의 수도로 1492년 1월 가톨릭계 군주인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라 1세에게 함락되었다.

 

고딕식 건물인 산타마리아 대성당(1523~1703)이 있고, 이 성당은 왕실 예배당 페르난도1세와 이사벨라 여왕의 납골당이 있다. 그라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알바이신 지구엔 유명한 알함브라 궁전과 그 궁전을 지키는 알카사바 요새, 그리고 술탄들의 여름 별궁 헤네랄리페가 있다.

 

스페인에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지로 이슬람 건축물과 예술품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다. 이 도시는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 및 신고전주의 양식의 아름다운 교회와 수녀원· 수도원· 병원· 궁전· 대저택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알론소 카노의 훌륭한 그림들과 조각품을 보존하고 있다.

 

알함브라 궁전 이외에 무어인이 지은 콰르토레알데 산토도밍고라고 부르는 13세기 저택과 14세기에 지은 무어인 왕비들의 궁전인 알카사르 헤닐이 있다. 카르투하 수도원(1516)과 복원된 산헤로니모 수도원(1492), 그라나다 대학교는 1531년에 설립한 역사적인 대학이다.

 

  *무어(moor)인

 

아랍인 스페인인, 베르베르인이 혼혈된 스페인계 이슬람교도. Moor라는 표현은 검은 사람, 모로코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무어인은 안달루시아 아랍문명을 창조했고, 그 후 11~17세기에 북아프리카에서 피난민으로 정착했다. 무어인의 의미는 이슬람교도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다.

 

로마인들이 오늘날의 알제리 서부지역과 모로코 북동부지역으로 이주한 신 로마의 속주 모리타니의 주민들을 일컫는다. 오늘날의 모리타니 이슬람 공화국은 모로코와 세네갈 공화국 및 말리 공화국의 광대한 사하라 사막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알함브라궁전

 

알함브라 궁전은 그라나다의 높은 언덕에 지어진 요새다. 언덕 사이에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알카사바 정상에 다다른다. 알카사바는 알함브라 궁전에서도 가장 오래된 성채로, 30여 개의 망루가 설치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벨라 탑에 오르면 그라나다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마을은 무척이나 환상적이다. 새하얀 건물들이 아기자기하게 터를 잡고 있는 이곳이 바로 그라나다의 정신과 영혼을 담고 있는 이슬람 마을 알바이신이다.

 

이슬람 왕조가 멸망하고 새로운 주인을 맞이할 무렵, 에스파냐 병사들은 이곳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해 주겠다는 페르난도 5세의 약속을 무시하고 닥치는 대로 약탈하고 잔혹한 살육을 저질렀다.

 

이교도를 소탕하고 신성한 하느님의 땅을 세운다는 그들의 종교적 사명 앞에 한 문명이 무참히 짓밟혔다. 그렇다고 무슬림들이 순순히 무릎을 꿇은 것은 아니고 이교도의 지배를 받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은 처참한 역사를 잊지 않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 그들의 피를 곳곳에 뿌렸다.

 

그 피는 하얀 벽면을 붉게 물들였고, 아직도 군데군데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가톨릭이 지배했지만 알함브라 궁전은 아랍 궁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랍어로 ‘붉은빛’이라는 뜻의 알함브라는, 겉으로 보면 붉은 빛이 도는 견고한 돌 조각을 쌓아 만든 밋밋하고 초라한 궁전에 지나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이슬람 건축 양식이나 화려함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궁전 안으로 들어가면 이슬람 건축의 특징인 ‘투박한 껍질 속에 숨은 화려한 알맹이’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궁전 안에 분수가 있는 아라야네스 정원이 전형적인 아랍식 실내 정원을 관망할 수 있다. 천국에서의 휴식을 표현한 시원한 공간 구조, 아라베스크 무늬의 벽면 장식과 마치 보석을 박은 듯 한 화려한 조각품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 준다.

 

‘사자의 정원’으로 발길을 옮기면 열두 개의 사자상이 떠받치는 분수가 중앙을 장식하고 있다. 둥그렇게 등을 맞대고 있는 사자의 입에서는 연신 물줄기가 품어져 나온다. 그렇게 흘러내린 물줄기는 홈을 따라 정원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간다.

 

물이 부족한 곳에 사는 아랍 사람들은 물에 대한 애착이 무척이나 강했다. 그러나 고산에서 수로를 만들어 물을 끌여당겨 쓴 지혜를 볼수 있다.

 

알함브라 궁전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이사벨 여왕은

“내 생애보다 더 귀한 궁전이므로 더 이상 손댈 게 없다.”

그대로 보전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이미 모스크를 헐어 버리고 그 자리에 성당을 지어 가톨릭의 상징적 승리를 충분히 새겨 두려고 했었다.

 

그 후 카를 5세는 알함브라 궁전을 예찬하였다.

 

“알함브라를 잃은 자여, 불쌍하도다. 알함브라를 버리는 삶을 택했으니 미안하다. 그런데 난 알함브라를 내 무덤으로 보존할 것이다.”

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알함브라 궁전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그런데 궁전의 주인인 이슬람 왕궁이 함락된 1492년, 그러나 에스파냐에서 쫓겨나 보합 딜왕은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북아프리카로 건너갔다. 800년 전, 그의 선조가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면서 의기양양하게 건넜던 바로 그 길을 거슬러 가서 모로코의 이슬람 도시 페스에 정착한 뒤 63세를 일기로 눈을 감을 때까지 알함브라를 잊을 수 없었다.

 

알람부라 요새의 정복은 스파이와 배신자에 의해서 정복되었다.

 

  (4)미하스

 

태양의 해변(프랑코가 외국인에게 해변을 분양해줌)에 독일인가 영국인이 즐겨 찾는다. 미하스는 역마가 있어서 관광객들이 말과 당나귀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였다. 산중턱에 빼곡히 늘어서 붉은 지붕과 하얀 벽 집들이 지중해의 강렬한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푸엔히롤라 산 중턱에 위치한 하얀 미하스는 코스타 델 솔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 중 한 곳이다.

 

비르헨 데 라 페냐 광장 역엔 항상 당나귀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미하스 수호 성녀인 폐냐 성녀를 천연 동굴 성당이 모셨다. 1900년에 지어진 타원형의 미하스 투우장도 앙증맞게 자리하고 있는데, 투우장 관중석은 하얀 마을을 제대로 조망하기에 너무 좋은 포인트이다. 마을 중심의 산 세바스티안 성당과 거리와 주거지의 창가와 벽엔 예쁜 꽃 화분이 걸려 미하스의 진가를 높였다.

 

  (5)론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말라가 주에 있는 론다는 원래 고대 이베리아인이 거주했던 곳으로 로마 시대에는 아키니포로 알려졌다. 8~15세기에는 무어인들이 점령하고 살았다. 로마 시대 유적과 무어인 유적 가운데 로마식 극장과 전쟁 때 물 봉쇄를 막기 위해 무어인들은 도시에서 강에 이르는 지하 계단(1911 복원)을 만들었다.

 

1485년 5월 20일에 로마 가톨릭 군주들인 페르난도와 이사벨라 여왕이 정복하여 되찾고 전장의 최전방 보류로 숨겨진 도시이며 무기제조창이 있었다. 투우의 발상지이며 협곡의 절벽위에 세워진 도시로 기마 사관학교가 있었다.

 

스페인 론다의 누에보 다리는 구시가지와 신시가를 이어주는 교량으로 바람이 떠 받쳐 만든 다리이다. 헤밍웨이는 이곳 론다에 머물며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를 썼다

 

그는 론다를 사랑하는 사람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 가장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인구 3만 5천 정도의 작은 시골 마을 이라 화려한 궁전이나 번화가는 없지만, 아찔한 협곡과 새하얀 집들과 론다 최고 명물인 누에보 다리를 보고 감탄을 자아낸다.

 

누에보 다리는 120m 높이의 타호 협곡위에 놓였고 그 아랜 과달레빈강이 흘러 신구 두 지역의 소통을 이루어냈다. 아라곤 지역의 천재 건축가였던 마르틴 데 알데후엘라가 40여 년 동안 공을 들여 1793년 완성하였다. 스페인 내전 당시에는 이곳에서 포로들을 수용하는 감옥이 있었고 포로를 떨어뜨려 죽였던 슬픈 역사를 지닌 장소이기도 하였다.

 

*여행자는 성자가 되는 것은 보고 듣고 느끼는 감정이 풍부해서이다.

*의복은 그 사람의 인격이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다. 유행을 타는 것보다 자기 개성에 맞는 독특한 취향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의복은 인격에 맞게 입어라.

 

  (6)세비야의 플라밍고

 

과달키비르 강 어귀에 있는 내륙 항구도시이다. 이곳은 문화 중심지로서, 이슬람교도들이 스페인을 지배했을 때의 수도로서, 스페인의 신세계 탐험의 중심지로서 역사적으로 중요했던 곳이다.

 

1503년 무역관인 카사데콘트라타시온의 설립과 함께 아메리카 대륙 식민지들과의 해외 교역에 있어서 독점권을 부여받았다.

 

20세기에는 항구가 확장 되었으며, 공업· 상업의 요지로 다시 활력을 얻게 되었다. 세비야 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 가운데 하나이다. 세비아의 난봉꾼-돈주앙-소설무대. 축제의 도시. 히랄다 탑. 황금의 탑, 스페인 광장, 세비아는 플라밍고의 고장(한풀이 마당놀이)이다.

 

집시의 무도, 플라밍고는 전쟁의 피해를 한으로 달랜 춤이다. 이곳의 서(西)고트족은 711년에 무어인들에게 점령당했다. 1248년 페르난도 3세가 이끄는 스페인 그리스도교도들이 이슬람교도들이 쫓겨난 뒤 이 도시는 급속히 지위가 격상되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으로 새로운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1503년 무역관을 설립하여 아메리카 대륙 식민지들과 해외교역을 독점하였다. 이 도시 출신의 화가인 벨라스케스, 수르바란, 무리요와 조각가인 후안 마르티네스 몬타녜스, 시인 페르난도 데 에라라 등은 스페인이 자랑하는 예술가들로 꼽힌다.

 

  *세비야 대성당(1403~1506 설립)

 

스페인 최고의 성당.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 가운데 하나. 어마어마한 규모, 이슬람 모스크였는데 가톨릭 양식으로 개조, 루네상스. 네오, 고딕, 바로크 양식. 콜럼버스 묘가 있다.

 

  (7)살라망카(Salamanca)

 

마드리드 외각의 르네상스의 대학도시. 도시가 사암의 적갈색을 띠고 있어서 황금빛 도시라고 한다. 살라망카 대성당. 수탉의 탑(행운을 상징)이 있고 스페인에서 가장 유서 깊고 르네상스 예술도시이며 스페인 최초 대학이 선 곳이다.

 

BC 217년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의 침략을 받았을 때 최대 전투장이었고 8~11세기에 로마인과 무어인들 사이에 전쟁이 잦았던 곳이다. 1087~1102년에 그리스도교도들이 이주해 왔다.

 

레온의 페르난도 2세가 이곳에서 의회를 만들었고 알폰소 9세가 1218년에 살라망카 대학교를 세웠다. 스페인 내란(1936~39) 때 프랑코 장군이 이곳의 관저에서 삼았다.

 

*대성당: 로마네스크 양식의 구(舊)성당과 신(新)성당이 양립한 유서 깊고 유적이다. 성당의 맞은편엔 살라망카 대학교(1415~33)가 전통을 자랑한다. 이 대학교의 총장이었던 미겔 데 우나무노는 대학 역사상 가장 책을 많이 소유한 총장으로 학자이자 작가였다.

 

그는 중세 여러 나라 책들을 수집하여 보관하였다. 후에 콜레히오데아나야(1760~68)란 기숙사가 딸린 대학으로 과학· 철학· 문학. 신학. 의학 등의 학부로 이루어진 역사 깊은 스페인 교육기관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다. 예수회 신학교(1617~1755)는 지금까지 목사나 신학도들을 배출한 교황청 창립대학교이었다.

 

  *.마요르 광장(1729~33)

 

회랑이 있는 아름다운 광장, 원래 투우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도시의 중심지에 지었다.(알베르토 데 추리게라가 설계함) 스페인의 역대 왕들과 프랑코 장군의 큰 메달이 양쪽에 장식되어 있는 회랑으로 알베르토 데 추리게라가 설계한 시청사가 옆에 있다.

 

호세 데 리베라가 '성모 마리아의 무원죄 잉태설'을 주제로 그린 프레스코화 그림이 남아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486년 신학자 공의회로부터 여러 번 심사를 받았던 수녀원이다.

 

전설적인 살라망카 동굴은 로마 시대에 세워진 지하 교회인데 가리비의 조가비로 만들어진 조각물과 탈레베나 말도나도 재상이 소유했던 산티아고 칙령의 상징물이 있다.

 

  (8)마드리드(madrid)

 

스페인의 수도,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산업의 주심지다. 이베리아 반도의 중앙에 위치한 카스티야 지방의 대표 도시이자 스페인 교통의 요충지이다. 16세기부터 펠리페 2세가 톨레도에서 왕궁을 마드리드로 옮기면서 스페인의 수도가 되었다.

 

왕실에서 수집한 방대한 미술품들을 전시하여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손꼽히는 프라도 미술관과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소피아 왕립 미술 센터에 전시되면서 마드리드는 세계적인 미술의 도시가 되었다. 카스티아의 왕 알폰소 6세는 1083년 이슬람으로부터 이 도시를 탈환하여 마드리드를 성장시켰다.

 

1466년 지진으로 알카사르가 큰 피해를 입었으나 카를로스 1세와 펠리페 2세가 그 자리에 다시 중세풍의 왕궁을 세우고 마요르, 세고비아 가까지 도시를 확장 하였다. 1492년 스페인에 대한 십자군의 재탈환이 종결된 후 무어인들을 남서부로 밀어냈다. 무어인 마을을 모레리아 라고 불린다.

 

톨레도에서 수도를 옮겨 1598년에 마드리드의 인구는 6만 명에서 1656년에는 10만의 인구와 1만 채의 건물이 있었던 대 도시였다.

 

후안 데 에레라와 프란시스코 데 모라와 같은 건축가들이 외무부 청사(1634), 시스네로스 궁정, 세고비아 다리, 산이시드로엘레알 교회를 건설하였다. 마요르 광장(고메스 데 모라)에서 투우, 불꽃놀이, 연극, 종교재판(공개처형) 같은 엄숙한 의식이 행해졌다.

 

마요르 광장에선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1701~14) 당시 합스부르크가에 대항하여 마드리드가 편들었던 부르봉 왕가의 집권 하에서 마드리드는 다시 성장의 시기를 맞게 되었다. 1734년 대화재로 알카사르(성.궁전)가 파괴된 자리에 펠리페 5세가 500개의 방이 있는 왕궁을 건설하였다.

 

우아한 석회암과 화강암의 벽을 가진 왕궁에는 티에폴로가 장식한 천장을 지닌 왕실과 멕시코· 페루의 정복자들인 에르난 코르테스와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검을 비롯한 무기들을 전시한 세계적인 수준의 무기 전시실인 아르메리가 있다.

 

마드리드는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에게 점령당했으며, 나폴레옹의 동생 조제프가 왕이 되었다. 1808년 5월 2일에 조제프에 대항하는 시민저항이 일어나 전면적인 독립전쟁으로 발전했다.

 

1814년 구금에서 풀려나온 페르난도 7세는 카를로스 3세가 계획한 자연사 및 과학박물관을 1819년에 완성하였고 그 당시 여러 왕궁에 흩어져 있던 왕족들의 소장품을 그곳으로 옮겼다. 이것이 세계적으로 주요한 예술박물관 중 하나인 프라도(미술관)의 시작이다. 마드리드 국민은 그를 영웅으로 불렀다.

 

1936년부터 3년간 치러진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마드리드도 큰 피해를 입었지만 프랑코는 후안 카를로스 1세를 왕으로 세워 마드리드는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스페인 내전

 

마누엘 아사냐가 이끄는 좌파 인민전선 정부와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우파 반란군 사이에 있었던 스페인의 내전이다.

 

1936년 7월 17일 모로코에서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내전이 시작되었고, 1939년 4월 1일에 공화파 정부가 마드리드에서 항복하여 프랑코 측의 승리로 끝났다. 내전으로 인해 스페인 전 지역이 황폐화 되었으로 프랑코는 재빨리 환원시켰다.

 

  * 마드리드의 명소

 

1.푸에르타 델 솔 2. 마요르 광장 (Plaza Mayor) 3. 산 미구엘 시장 4. 알무데나 대성당 5. 마드리드 왕궁 6. 마드리드 에스파냐 광장 7. 그란 비아

8.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 센터 9. 국립 프라도 미술관 10. 레티로 공원 11. 알칼라 문 12. 시벨레스 광장 13. 푸에르타 델 솔 14.마요르 광장

 

15. 미구 16. 마드리드 에스파냐 광장 17. 그란 비아 18.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 센터 19.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스타디움 20. 티센 보르네미스사 미술관 (Museo Thyssen-Bornemisza) 21. 국립 프라도 미술관 22. 레티로 공원 23. 알칼라 문(Puerta de Alcalá) 24. 세라노 거리 25. 라스 벤타스 투우장 26. 시벨레스 광장 27. 왕립 산 페르난도 미술 아카데미.

 

  (9)콘수에그라

 

세르반테스가 1605년 돈키호테를 썼던 무대였다. 대평원에 갑자기 솟은 산에 리만차 풍차가 세워져 있다. 풍차의 언덕이라고 한다. 바람이 어찌나 센지 사람이 날아갈 정도다. 이 바람의 언덕에서 세르반테스는 풍차를 향하여 칼을 빼들고 괴물을 없앤다고 날뛰었다는데 그 이유는 뭘까?

 

스페인 페리페 3세 왕은 세르반테스를 보고 요정복통을 했다는데 과연 왕은 그가 풍자하는 내용을 알고 웃었을까? 작가는 그의 인생자체가 소외받은 울분으로 싸여 있었다. 오랜 투옥생활을 하다가 풀려나서 썩어빠진 사회와 귀족의 부패에 칼을 들고 미친 기사가 되어 날뛰었다.

 

‘작가는 영혼이 깃든 소설을 써서 독자의 영혼을 울려야 한다.’

그는 비실비실한 로시난테 말과 엉뚱한 비서 산초 판자를 데리고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다고 날뛴다. 스페인의 정신, 그것은 스페인 광장에 그의 모습으로 남았다. 1616년 세익스피어어와 세르반테스가 같은 해에 죽었다.

 

  (10)톨레도(Toledo)

 

톨레도는 스페인의 중세 수도로 스페인 문화를 잘 간직하여 있는 유적도시다. 마드리드에서 남남서쪽에 삼면이 타호 강으로 둘러싸인 사발 같은 암반 계곡의 천연 요새이다.

 

BC 193년 로마의 장군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가 정복하여 로마의 지배를 받다가 6세기에는 서고트 왕국의 수도였다. 민주화된 그리스도 공의회가 개최되었던 도시로 레카레드 왕이 제3차 공의회(589년)때 그리스도교로의 개종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이슬람 점령기(712~1085)에는 아랍인과 그리스도교도들의 융화된 혼성 툴라이툴라를 이루고 살았다. 오랫동안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유대교 문화가 융합된 도시였다. 1560년 펠리페 2세가 마드리드를 수도로 선택한 이후 쇠퇴하였다.

 

도시가 암석지대를 흐르는 강을 따라 건립되었기 때문에 시가지가 좁고 구불구불하며 경사가 가파르고 지면이 울퉁불퉁한 요새이다. 성벽은 무어인과 그리스도교도들에 의해 축조되었지만 서고트족이 축조한 것도 있다. 이슬람교의 영향을 받은 건축물로는 십자궁륭을 갖춘 비브알마르돔모스크와 라스토에르네리아스 모스크, 무데하르 양식의 유대교 회당들이다.

 

산토토메 대성당은 1226년 페르난도 3세와 대주교 로드리고 히메네스 데 라다가 착공했다. 성당의 탑상에 엘 그레코가 그린 고딕 양식의 벽화는 가장 스페인적이라고 평가받는다. 톨레도 박물관엔 엔리케 데아르페가 제작한(1524) 일련의 성체용기와 엘 그레코, 고야, 반다이크, 모랄레스와 그 밖의 화가들이 그린 여러 점의 그림들이 소장되어 있다.

 

언덕위에서 시내를 굽어보며 우뚝 우뚝 서 있는 알카사르(요새)는 1531년경 알론소 데 코바루비아스의 설계로 세워졌고 프란시스코 비얄판도가 조경한 훌륭한 경관을 갖추고 있으며 그 안에 군대 박물관이 있다.

1936년 스페인 내란 중에 가장 치열한 전투장이었다.

 

톨레도에서 생산되는 강철은 질 좋기로 유명하다. 톨레도 검(劍)은 오랜 시대에 걸쳐 명성을 얻어왔다. 중요한 무기 공장과 다마스크긴(鋼), 조각용 금속판을 생산하는 공장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무데하르의 전통양식으로 장식된 금속세공품을 생산하고 있다. 골몰마다 금속을 세공하는 기술자들이 세련된 공예품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3.포르투갈

 

  (1)리스본.

 

해양대국을 이루었던 포르투갈 최대의 항구 도시이자 수도이다. 3세기 로마, 8세기 이슬람의 지배를 받다가 12세기에 알폰소 1세에 의해 해방 되었으며, 코임브라에 있던 수도를 이곳으로 옮겨 왔다. 지중해와 북해를 연결하는 최고의 해상 교통 요지로 15세기에 들어 활발한 무역이 이루어지면서 해양대국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1755년 지진으로 인한 화재와 쓰나미로 도시 2/3가 파괴되면서 리스본의 전성기는 끝이 났다. 폼발 후작이 파리를 모티브로 삼아 바둑판 모양으로 도시 재건 계획을 수립하여 기울어지고 파이고 솟은 대로 (폼발 양식)도시를 다시 디자인 하였다. 아무튼 폼발 후작의 재건 계획을 시작으로 리스본은 또 다시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현대 도시로 변화를 시작했다.

 

크고 작은 7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는 구시가지는 리스본의 상징인 노란 트램이 어렵지 않게 오르내릴 수 있다. 각 지구마다 서로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리스본의 매력이기도 하다.

 

사이유 다리는 리스본의 갑문이다. 바람이 떠받쳐 유지하는 다리로 거리에 검은 문양의 보도블록 대리석이 물결모양으로 갈려 있다. 검은 대리석 보도블록은 모두 포르투갈의 식민지임을 알 수 있다.

 

  *벨렘탑

 

벨렝탑(Torre de Belém)은 포르투갈 리스본 벨렝에 있는 타워로, 인근에 위치한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함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6세기 마누엘 1세에 의해 바스코 다 가마의 세계일주의 위업을 기념해 만든 타구스 강 선박의 출입을 감시하는 목적의 탑이다.

 

건축 양식은 마누엘 양식이다. 석양이 물들 때 벨렝탑은 그림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비라도 내린 후라면 천국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줄 만큼 묘한 장면이 연출된다. 벨렝탑과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기도 했다.

 

  *포르투갈 대지진.

 

1755년 11월 1일 9시 40분, 진도9의 강진이 리스본을 강타하였다. 리스본 땅이 솟구치는 지진이 3 차례 있었다. 지진파로 전 도시를 파괴하는데 걸린 시간은 단 3분이었다. 높이 10m가 넘는 거대한 해일로 쓰나미가 덮쳐 바닷물이 쓸고 간 도시는 만진창이가 되었다.

 

사망자는 3만에서 10만 명. 살아남은 자도 '저주의 도시'를 황급히 떠났다. 도시가 완전히 뒤틀리고 내려앉고 기울고 가라지고 솟구쳤다.

 

계몽주의자 사상가 볼테르는 신에게 울분했다. ‘정의로 신도들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이들에게 이런 참흑한 재해를 안겨 주십니까. 그토록 신앙심 두텁다는 리스본 사람들인데 왜 재앙을 내리십니까. 그들이 파리나 런던보다 죄가 크기 때문인가’ 라며 울부짖었다.

 

리스본 최대 번화가는 벨렘 지구와 바이샤 지구인데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때 가장 큰 피해를 본 장소이기도 하다. 당시 대부분 건물이 무너져 폐허가 됐지만, 도시재건 정책과 더불어 재건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리스본 거리는 온통 기울고 가라앉고 불거진 건물이나 가로가 많다. 검은 대리석 모자이크 바닥이 인상적이다. 특히 바이샤 지구의 로시우 광장는 대리석 모자이크로 유명하다.

 

  *.로시우광장

 

로시우 광장은 사방으로 명소에 둘러싸여 있다. 광장 중앙에 높이 솟아 있는 원기둥엔 독립 브라질의 첫 번째 왕 페드로 4세의 동상이 서 있다. 이곳은 13세기부터 리스본의 수많은 공식행사 장소로도 쓰였다.

 

  *.신트라(Sintra)

 

산속의 도시, 영국 시인인 바이런이 ‘에덴의 동산’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동화 속 세상 같은 아름다운 도시이다. 역대 왕가의 여름 궁전이 자리하고, 귀족들의 피서지로도 사랑 받았던 곳인 만큼 지금도 호화로운 저택과 호텔, 레스토랑이 이곳에 많아 찾는 여행자들은 마치 귀족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특히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두 군데 모두 등재되어 있다. 동화책에서 자주 나오는 페나 성은 신트라의 랜드마크이다. 귀족들의 피서지로도 사랑받았던 것이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서부 항로의 개척을 추진하여 1488년에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발견하고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벨렝탑은 1515년 엠마누엘 1세가 바스쿠 다가마의 세계일주 위업을 기념하며 이 탑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신대류과 대서양으로 가는 향로를 볼 수 있다. 뱃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해양의 무사 귀환을 빌었다. 그것이 검은 돛이다.

 

  *검은 돛배

 

파두(fado)는 포투갈의 민속 음악, 검은 돛배는 그대표적인 노래다. 그 노래가 울러 퍼지면 포투갈의 여인들은 눈물을 흐리며 마지막 속치마를 벗는다.

 

남편이 바다에 나갈 때 여인들은 속치마를 7개를 준비한다. 7일 만에 돌아오길 기다리며 하루에 한 벌식 갈아입고 벗는다. 안 돌아오면 재가를 해 버린다.

 

선원들은 바다에 나가기 전에 집에 하얀 칠을 한다. 그런데 남편이 돌아오지 않으면 여인들은 집을 빨강색으로 칠 한다. 훗날 남편이 돌아왔으나 집을 찾지 못한다. 그땐 이미 여자는 변절했다는 뜻이다.

 

파두의 선율에 따라 구성지게 퍼지는 포트갈의 노래 검은 돛배는 죽은 영혼을 싣고 돌아오는 배이다. 돌아 올수 없는 뱃사람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의 아픔 가슴이 절절하다.

 

파두(fado)는 운명을 상징하는 포트갈의 민중음악, 파두의 여왕 아말리아 로드리게스가 부른 검은 돛배(barco negro)는 뱃사람의 슬픔과 고독, 이별, 사랑을 운명적으로 받아드리는 음악이다.

 

     검은 돛배(Barco negro)

     (아말리아 로드리게스).

 

  아침에 추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모두들 무서워해요

  난 해변에 쓰러져 있다가 눈을 떴죠

  당신의 눈은 나에게 말하고 있었어요

  내 마음 속에 한 줄기 태양이 비춰왔어요

  당신의 눈은 나에게 말하고 있었어요

  그 순간 내 마음 속에 한 줄기 태양이 비춰왔어요

  그리고 바위와 십자가를 보았죠

  당신이 탄 검은 돛배는 밝은 불빛 속에서 너울거리고

  당신의 지친 두 팔로 나에게 손짓하는 것을 보았어요

  바닷가 노파들은 당신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죠

  미친 여자들이야! 미친 여자들이야!

  난 나의 사랑을 알고 있어요

  당신이 떠나버린 것이 아니란 것을

  사람들은 당신이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고 말하죠

  난 나의 사랑을 알고 있어요

  당신이 떠나버린 것이 아니란 것을

  사람들은 당신이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고 말하죠

  유리 구슬을 강변에 뿌리는 것 같은 바람 속에

  꺼질 듯한 불빛 속에서 노래하는 물 위에

  달빛은 따사롭고 나뭇잎처럼 흔들리는 배

  내 마음엔 언제나 당신이 함께 있어요

  달빛은 따사롭고 나뭇잎처럼 흔들리는 배

  내 마음엔 언제나 당신이 함께 있어요.

 

파두 곡은 ‘Barco Negro(검은 돛배)’, ‘Maldição(어두운 숙명)’, ‘Que Deus Me Perdoe(신이여 용서하소서)’, ‘Duas Luazes(두 개의 빛)’, ‘Naufragio(난파선)’, ‘Gaivota(갈매기)’, ‘Lagrima(눈물)’ Cancao do Mar(바다의 노래) 등의 제목에서 뱃사람에 대한 슬픈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카스카이스(Cascais)

 

19세기 후반 왕실 휴양지로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고급 리조트 지역으로 발전했다. 귀족들이 사용했던 저택들은 호텔, 레스토랑, 도서관 등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해변을 따라 산책하며 여유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여행객들이 카스카이스를 많이 찾는 이유는 카보 다 로카에서 리스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를 이용하기 위해서이다.

 

*인생은 늘 우연이다. 아무리 꼼꼼하게 계획한다고 해도 변수가 발생하기 일쑤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할 순 있지만, 그 누구도 인생은 처음이다. 경험한 적 없는 인생에서 완벽이란 건 없다. 인생을 여행에 빗대는 이유다. 출생과 함께 시작하는 인생 여정은 언제 어디로 향할지도, 언제 어떻게 끝날지도 명확하지 않다. 늘 계획하고 탐구하지만 어떤 우연도 피할 수 없다.

 

  -어느 여행가의 고백.-

  *.제로니모스 수도원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포르투갈 리스본 벨렝에 있는 수도원으로, 인근에 위치한 벨렝탑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부근에 해양개척 자인 엔히크 왕 탄생 500주년을 기념한 비가 세워져 있다.

 

벨렝지구는 포르투갈이 가장 화려했던 과거의 영광이 남아 있는 곳이다. 리스본의 과거와 현재가 관통하는 다른 지구와는 전혀 다르다. 바이샤 지구에서 에선 오래전 포르투갈의 전성기를 엿볼 수 있다.

 

이곳에서 제로니무스 수도원이 가장 먼저 눈에 띄는데 한 면의 길이가 300m에 달하는 리스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수도원을 나서면 건너편에 타구스강을 바라보며 높게 세워진 조형물이 신대륙 발견기념비(Padro dos Descobrimentos)다.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포르투갈의 용감한 선원들과 그들의 후원자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항해 왕이라 불린 엔리케의 사후 500주년을 기념해 1960년에 세워졌다.

 

  *해양제국의 문을 연 엔히크 왕.

 

포르투갈 왕 엔히크(1394-1460)는 항해의 문을 열었다. 아프리카를 돌아 아시아로 나가는 항해 로를 개척하는 것을 지원하였다. 1488년 희망봉 발견, 1499년 바스코 다가마가 희망봉과 인도 항로개척, 15세기 대항해로 식민지개척에서 향신료와 귀금속을 무역하여 해양대국을 이루었다.

 

엔히크는 아버지 주앙 1세를 따라 1414년 지브롤터 해협 너머 북아프리카 해안에 있는 무슬림 항구도시 세우타를 함락시키고 사하라 무역로를 연 것 직접 보고 이슬람권 너머 아프리카 대륙으로 포르투갈의 무역을 확장시켰다.

 

1415년 북아프리카의 회교도를 공격하여 공을 세웠으며, 1418년 이후 아프리카 서해안에 많은 탐험 선을 보내어 항로를 개척하기에 힘썼다.

 

그는 세인트빈센트 곶에 천문대와 항해 연구소를 세워 탐험 항해사들을 파견교육시켰다. 리스본에서 해양개척과 식민지 지배병사로 끌려갔다가 거의 돌아오지 않았다 .리스본을 떠나는 군인과 뱃사나이들은 거의 돌아오지 못하고 식민지에서 바다에서 죽었다.

 

  (2)카보 다 로카(Cabo da Roca)

 

유럽 대륙의 가장 서쪽에 있는 유럽서쪽의 땅끝 마을 카보 다 로카(로카 곶)는 140m의 절벽 위로 등대가 서 있고, ‘이곳에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 십자가 탑이 거센 바람에도 굳게 서 있다.

 

바람이 무척 세다.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대양을 향하여 꿈꾼 이상이 실현되길 빈다.

 

카보 다 로카 주변에는 드넓은 녹지대와 관광 안내소인 등대만 우뚝하지만 이곳에서 대서양을 향하여 꿈을 기원하면 꼭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관광 안내소에서는 ‘최서단 도착 증명서’를 유료로 발급해주고 있다. 유럽의 서쪽 땅 끝 마을, 뱃사람들은 대서양을 바라보며 헛된 꿈과 상처를 버리고 새로운 꿈을 담아간다.

 

시인 가망 루지는 ‘여기가 땅 끝이다.’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모든 시작은 끝을 내야 새로 시작된다. 용서하라. 용서하지 않는 자는 용서받지 못한다.

 

  (3)파티마

 

파티마는 세계 3대 성모 발현지. 가톨릭의 성지순례지. 1917년 5월 13일 성모 발현 이후 해마다 수천 명이 성지 순례자들이 대광장에 모여 촛불기도로 세계평화와 자유를 기원 한다.

 

세 명의 어린 목동 루치아(10세), 야신타(7세), 프란시스쿠(9세)의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서 죄인들의 회개, 기도, 로사리오에 대한 기도를 당부했다. 아이들은 성모 마리아가 매월 13일 나타난다는 비밀을 굳게 지켰지만, 어느새 소문이 나면서 매월 13일에 몇 천 명의 신도들이 이곳에 모이기 시작했다.

 

“성모님, 우리가 거지말 쟁이라고 처형 한답니다. 살려주십시오.”

“그래, 내가 세상에 나가마.”

 

성모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발현을 사람들에게 증명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10월 13일, 7만 명의 사람들이 모인 앞에 거대한 빛이 나타나면서 성모가 발현하여 이들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확인시켜 주었다.

 

교황청에서는 성모 발현과 예언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1930년 레이리라 주교가 공식적으로 인정함으로써 바티칸 교황청에서도 성모 발현지로 인정하였고 파티마는 세상에 알려지면서 수많은 순례자들이 발길이 멈추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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