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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7 오후 2:49:10 입력 뉴스 > 사설&칼럼

(김용필 역사조명-거문도 사건)
『김류의 해상기문』

(거문도 유생과 러시아 함장의 필담 외교)



    1.김류의 풍류, 오리부선 타고 다도해를 순회하다.

 

▲ 여수출신 소설가 김용필.
 
여수시 거문도 향토 유학자인 김류(귤은橘隱)는 오리 모양의 부선(鳧船)을 만들어 타고 손죽도. 초도. 거문도. 청산도를 순회하며 섬주민에게 격물 궁리의 유학과 실학을 가르쳤다.

 

그는 거문도를 점령한 영국. 러시아, 청나라의 외교관들을 만나 필담으로 무단 점거 부당성을 따진 민관 외교관이었다.

 

그는 파도와 바람에 견디는 부선을 타고 다니며 섬주민을 교육 하였다. 부선은 물밑에 잠겨 달리는 거북선 같은 잠수선이었다. 그는 영국의 함선을 보고 부선도(鳧船圖)를 설계하여 손수 부선을 제작하였다.

 

부선은 일반 배위에 철갑을 두룬거북선같은 배로 겉으로 보기엔 철갑선(鐵戰船)은 배였다.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부선(鳧船) 제작 기술은 귤은재문집에 실려 있었다.

 

부선의 선체 길이는 50자요, 머리는 오리모양의 긴 목과 부리를 가졌고 돛은 없고 꼬리는 물갈퀴 같이 두개의 닻을 달아 방향을 조정하였다.

 

속도조절은 배 옆에단 두 대의 노를 저어 달렸다. 배 바닥은 뗏목같이 통나무를 붙여 엮어 배를 만들고 그 위에 널배를 올려놓은 모양이 천상 거북선이나 잠수함 같았다. 센 물살을 헤치고 나가도 배안으로 물이 들어오지 않아 먼 항해도 가능하였다.

 

김류는 오리부선을 타고 손죽도, 초도, 거문도, 청산도를 왕래 하며 섬주민을 계도한 유학자이며 풍류가였다.

 

거문도는 한 난류가 교차하는 곳이라서 어족이 풍부하여 대량의 고기를 잡는 어장이었다. 우리나라 최대 삼치 어장과 갈치 어장이 크게 형성되어 파시가 열릴 땐 일본의 어선까지 참가하였다.

 

거문도 참치와 갈치는 맛이 좋아 막 잡아 올린 은빛 삼치를 굽고 싱싱한 갈치와 감성돔을 회로 무쳐 소주잔을 기울이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김류는 삼치와 갈치구이 안주로 술잔을 걸치고 거문도의 절경을 시가로 노래하였다.

 

거문도 삼호팔경(三湖八景)

橘亭秋月(귤정추월) 竹林夜雨(죽림야우)

廘門怒潮(녹문조조) 龍巒落照(용만낙조)

白島歸帆(백도귀범) 梨谷明沙(이곡명사)

紅國漁化(홍국어화) 石凜歸雲(석름귀운)

 

유자 숲 정자에 달빛이 비치더니 대나무 숲에 밤비가 내리고

녹산 벼랑에 성난 파도가 물기둥을 이루고 용암 사이로 낙조가 걸리며

백도에서 돌아오는 고깃배가 배꽃 같은 모래와 수정 같은 바다에 닿고

고깃배의 불빛이 불야성을 이루며 바위섬에 안개가 걷히니 지붕이 보이누나.(거문도 명물은 삼치와 갈치 유자와 동백꽃이다)

 

   2. 조선말 거문도는 서양 열강이 각축전을 벌린

      질곡의 역사가 있었다.

 

조선말 영국이 무단으로 거문도를 점거하여 영토화 하였고 이에 러시아가 브레이크를 걸고 조선 공략을 저지하는 싸움이 벌어지는 찬라에 중국이 중재하여 영국과 러시아를 몰아냈으나 청일 노일 전쟁에 승리한 일본이 대륙공략 기지로 삼았다.

 

   .영국의 거문도 침입

 

  여수 거문도는 서양인 사절단이 조선에 첫 상륙한 땅이다. 1842년 영국의 해군 제독 베르체르. 해밀톤이 거문도를 무단 점령하였다. 서양의 열강들이 거세게 개항을 두들겼으나 대원군은 문을 굳게 닫고 서양 세력을 물리쳐 쇄국을 강화 하였다.

 

영국 함대 (해밀턴 제독)가 거문도를 탐사하려 왔다가 무단 점거하고 거문도를 포트 해밀턴(=해밀턴 항)이라 명명하여 세계의 해도(海圖)에 표시 하였다.

 

이때 이 지방 유학자 김류와 김양록이 영국한대로 가서 무단 점거의 부당함을 필담으로 따지며 영국에 대항하였다.

 

잠시 물러난 영국은 1855년 1천명의 해군으로 거문도를 무력 점령하자 청나라는 제독 정여창을 보내 영국의 거문도 주둔을 질타하였다. 영국은 섬사람을 보호 하겠다는 약속과 통신케이블을 놔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거문도 점거를 허락받았다.

 

영국군은 1885년 4월 15일 이곳을 점령한 뒤 상하이까지 해저케이블을 설치하여 통신망을 확보하고 1887년 2월까지 거문도를 점령하였다. 영국은 2년 반 동안 거문도를 점령하고 중국과 협상으로 1887년 9월2일 거문도에서 물러났다. 그 기간에 영국은 우리나라에 최초로 당구와 테니스를 공급 하였다.(거문도 청년들이 당구를 처음 배웠다.)

 

그 후 청일. 로일 전쟁에서 이긴 일본이 거문도를 장악하고 일본이 대륙치략의 전진 기지가 되었다.

 

   .백러시아 푸티아틴의 거문도 침략

 

1854년 4월,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하자 푸티아틴 제독이 이끄는 러시아 함대가 거문도에 기항하였다.

 

러시아는 동방의 진주 블라디보스톡을 개척하면서 일본과 조선, 청나라를 동시에 공략하였다. 1854년 러시아는 조선의 영흥에 함선을 정박시켜 놓고 동해안에서 남해안, 서해안을 둘러보며 조선 영토를 측량 하였다.

 

제정 러시아의 극동 진출 함대 ‘팔라디’호의 푸티아틴 함장(중장)은 비서관 곤차르프와 중국인 통역관 고시게비치를 데리고 조선 해안을 측량하다가 거문도에 상륙하였다. 약 1주일간 영국과 대치하면서 빵과 보드카를 나눠 먹으며 섬 주민들과 친밀하게 교제를 하였다.

 

거문도의 유학자 김류와 김양록이 나서서 청나라 통역관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와 필담(筆談-글을 써서 대화를 함)으로 가문도 무단 점검의 부당함을 지적하였다. 러시아는 친화적으로 그를 설득시켰다.

 

곤차로프는 거문도에서 겪은 이야길 기행문으로 남겼다. 그는 푸티아틴 함장이 동양 개척선을 운영한 내용을 러시아 정부에 기사문으로 보고하였다.

 

‘거문도에 갔더니 갓을 쓴 두 노인이 만남을 요청하였다. 그들은 이 지방 유학자 만회(晩晦) 김양록과 귤은(橘隱) 김류라고 밝혔다. 만회는 정작리 마을 훈장이고 귤은은 유학자였다.

 

그들은 정부 관문에 버금가는 필담 능력을 갖고 있었다. 두 노인은 학문이 높아 우리가 감탄할 정도로 언어를 구사하여 나눈 필담은 정부 관원 이상의 질의와 응답이 마치 외교관 같았다.

 

러시아가 거문도에 와서 유학자 김류와 한·러 교섭을 필담으로 나눈 외교문서는조선이 외국인과 교섭한 최초의 기록이었으나 당시 고흥현감은 이문서를 조정에 보내지 않았다.

 

   .푸티아틴이 러시아에 보낸 거문도 점령 기사문 

 

러시아는 시베리아를 점령하고 흑룡강으로 진출하여 우스리강 남쪽 블라디보스에서 부동항 건설을 하던 중이었다. 푸티아틴 제독은 러시아 황제로부터 4척의 군함으로 극동에서 일본을 중심으로 여러 나라와 개항 및 국교 협약의 전권을 위임받아 1854년 4월 거문도에 도착했다.

 

   *.1854년 3월 29일

 

우리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영흥을 거쳐 일본 나가사키로 가기 전에 영국이 올린 해도 해밀톤(거문도)으로 가고 있었다. 거문도(해밀턴)로 가는데 300 마일이나 남았다. 비는 계속 내렸다. 수병이 갑판에서 지네를 발견하여 법석을 떨었다. 비와 안개 속을 날던 바다 제비 무리가 함선 안으로 날아 들어와 바퀴를 잡아먹고 있었다. 참새 떼까지 날아와서 먹이를 쪼았다.

 

   *.1854년 4월 4일

 

 4월 2일, 아침에 해밀톤에 도착하였다. 섬은 마치 ‘물속에 떠있는 보석상자 같았다. 3개의 섬을 둘러싼 곳은 파도가 전혀 없는 호수였다. 정치적으로 조선은 독립국이지만 중국에 종속되어 있어서 조선왕은 중국의 황제로부터 권한을 승인 받고 있었다.

 

가문도(해밀톤)엔 사람들이 별로 살지 않았다. 우리는 해밀톤 섬 주민과 중국 통역관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하였다. 조선인은 유구인(오끼나와)과 비슷하다. 도민들이 우릴 대하자 몹시 거칠어졌다. 우리는 주민을 함선 안으로 불러들여 홍차와 빵과 비스킷과 램주를 대접했다.

 

그들은 처음 먹는 빵, 차, 램주를 맛있게 먹고 마셨다. 그들은 우리가 입은 상. 하위로 구별된 양복과 장화를 보고 신기하다며 입어 보겠다고 하였다. 그들은 우리의 피부색이 흰색이라고 웃음을 자아냈다. 해밀톤 섬사람들의 생활은 지저분했으나 마음은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오늘은 섬사람들이 우리 함선으로 올라와서 생선 삼치 20마리와 4통의 물을 주고 갔다. 우린 섬 주민들에게 배의 내부를 보여주었다. 의사소통은 주민대표 노인 2명과 우리 측의 아바쿰 신부와 고시게 비치(중국어 통역)를 통해 한자 필담으로 이루어졌다.

 

섬 주민들은 이방인들의 서양 제복과 부츠를 신기한 듯 만지기도 하였다. 의사소통은 필담으로 하였다.

 

“이봐요, 백인들, 북쪽에서 왔소? 남쪽에서 왔소?”

“우린 북쪽 제정 러시아에서 왔소.”

 

푸티아틴 제독은 김류에게 조선왕 앞으로 개항을 요청하는 공한을 보냈다.

“이 요청서를 꼭 왕에게 보내주세요.”

 

‘중국이 서양과 수교했고, 일본도 곧 개항 할 것이니 조선도 개항 할 것을 권유합니다.’

그러나 당시 흥양현(고흥군) 소속의 지방관헌은 처벌이 두려워 조정에 보고서를 보내지 않았다.

 

   *.1854년 4월 5일

 

다소 불쾌한 사건이 발생했다. 동료 중 3명의 병사가 뭍에 올라갔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봉변을 당했다. 이유는 초가지붕 위로 뛰어 다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다에 처넣었다. 그때 병사들이 총기로 위협하였다.

 

그때 놀란 마을 대표가 긴 문장으로 사죄문을 썼다. 모르고 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린 함선으로 온 섬사람들에게 홍차와 보트카와 비스킷을 대접하였다.

 

   *. 1854년 4월 18일

 

함선은 해밀톤에서 15일을 보내고 대마도로 떠났다. 그리고 1854년 5월 2일부터 5월 23일까지의 22일간, 두만강 어귀에서 거문도까지 해역 국경 실측 작업을 하였다. 이것은 우리 군함에 의한 최초의 한반도의 동해안 측량이다. 함장 푸티아틴은 이 작업을 통해 영국 해군성이 만든 조선의 지도를 대폭 수정하였다.

 

함장 푸티아틴은 조선 국왕으로부터 측량 허가증은 얻지 못했으나 조선 국왕에게 사실을 말하고 개항을 요청하였다. 우린 조선의 해안을 정밀 탐색하여 조선의 지도를 만들었다.

 

이에 향토 유학자들이 조정대신 들고 일어나다.

 

   3. 김류와 러시아 함장 푸티아틴과 필담 기사문

 

그 때 김유는 만회(晩悔) 김양록(金陽錄)과 러시아의 함선에 올라, 당시 중국에서 활동하는 야소회(耶蘇會) 아바큼 신부의 통역으로, 필담을 나누고 『해상기문(海上奇聞)』을 남겼다.

 

당시 푸차틴 제독은 김유 등에게 정중하게 러시아 황제가 조선 정부와 국교를 맺고, 통상을 하자는 내용의 국서를 건네며 조선 정부에 전달해 줄 것을 요청했다.

 

김류의 『해상기문(海上奇聞)』은 조선과 러시아의 첫 외교문서 였다. 당시 조선은 대원군의 철저한 쇄국정책 때문에 이 문서는 전달되지 못하고 결국 이문서는『귤은재유고』 속에 남아 전해 올 뿐이었다.

 

 김류와 러시아의 함장과 나눈 필담 외교문서, 해상기문(海上奇聞)

 

푸티아틴 :러시아는 조선과 화친(和親) 조약을 맺고자 거문도에 왔습니다.

김류 :조선의 조정은 서양의 어느 나라와도 통상을 맺지 않겠답니다.

푸티안틴 : 이미 중국은 5개 항구를 열어 통상의 길을 열었고 서양 열국이 잇달아 서로 접촉하고 있소이다.

김류 :제독, 나는 관아의 대표가 아니고 이곳 주민일 뿐입니다. 나와는 그런 이야길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푸티아틴: 그렇다면 우리가 조선에 통상의 길을 열 터이니 우리가 잠시 이곳에 머물게 허락해 주세요. 그리고 당신이 내 말을 대변해 주시오.

김류 : 조선이 화친을 거부하는데 러시아가 거문도에 온 것은 불법입니다.

푸티아틴 :이것은 불법이며 잘못된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린 머잖아 조선과 국교를 틀 것입니다.

김류 :그럼 잠시 머물다 가십시오. 그러나 간절히 바라건대 잠시 잠깐 거문도에 정박하면서 이곳에 있는 한 민심의 동요가 없게 행동을 조심해 주십시오.

푸티아틴 : 알겠습니다.

김류: 그러나 우리의 대화는 어디에도 남기면 안 됩니다. 그 사실을 조정에서 알면 난 처벌을 받습니다.”

 

푸티아틴은 이 기사를 러시아에 전했으나 조선의 조정엔 알려지지 않았다. 나중에 거문도 선비 김류(1814-1884)가 자신이 쓴 저서 ‘해상기문’에 기록하였고 러시아어 공한은 조선측이 해독할 수 있도록 한문 번역본 237자 문서로 번역하여 남겼다.

 

1854년 4월 14일 이전에는 조선의 어느 곳에도 외국인이 기항 한 적이 없으며 거문도에 최초로 러시아가 기항했고 또한 김류와 푸티아틴이 나눈 여러 장의 해상기문은 최초로 수교한 외교문서임은 분명하다. 푸티아틴 제독은 3년 뒤인 1857년 7월에 아메리카호를 타고 다시 거문도를 방문했다.

 

   4. 김류는 누구인가(1814년-1884년)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귤은(橘隱). 조선 후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문장가. 1814년(순조 14)거문도 동도의 유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장대한 체격을 갖춘 김류는 조부모와 부모가 모두 문장에 능숙하고 학문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거문도의 서도에 살던 김양록(1806~1885)과 장흥의 이희석, 추려(秋旅) 김대원 등과 함께 퇴계, 율곡과 함께 조선성리학의 6대가로 추앙되는 노사(蘆沙) 기정진(1798~1879) 밑에서 수학하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거문도와 청산도 등지에서 제자를 길러내며 야인으로 살았다.

 

학문이 높았으나 과거를 포기하고 남해 절해의 고도인 거문도 에서 낙영재(落纓齋)를 짓고 후학들을 가르치며 학문에 전념했다.

 

김류는 궁벽한 도서의 문물을 고치고 벽촌을 변화시킨 문인, 애향 운동가, 교육자 등으로 삶을 살다가 1884년 4월에 우환으로 청산도에서 별세하였다. 310여 시편이 『귤은재문집』에 실려 있다.

 

김류는 동백꽃길을 좋아했다. 거문도의 명물은 ‘명주(明珠)와 금귤(金橘)과 동백이다. 겨울이면 수월산 아래 거문도 등대로 가는 동백 숲길에 붉은 동백이 아름답다. 유학자 김류는 동백꽃을 슬픈 사랑에 비유하였다.

 

‘동백꽃(冬栢花)’겨울 텅 빈 나뭇가지, 휑한 섬에묵은 동백나무, 봄 지피고서 겨울을 견디네이곳 봄볕이 이토록 넉넉하다면추위 속 피는 꽃잎 고운 자태 분명하리대나무와 닦아가며 굳은 절개 나누었고봄의 선봉으론 매화를 앞세웠으니이 꽃은 조금 있다 열매를 맺을 텐데잉태 시 원기는 으뜸으로 받을 걸세.

 

동백꽃의 하려함 뒤엔 늘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죽음은 그리움 속에 자리하고 그리움은 죽음을 찾아가는 부표이다. 꽃이 지듯 그리움은 끝이 난다. 그런 환희와 상실의 소멸이 온몸으로 피었다 온몸으로 떨어지는 꽃을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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