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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7 오후 3:42:47 입력 뉴스 > 사설&칼럼

(김용필/힐링 여수)
“여수에 살다”



여수는 힐링 생활의 최적지이다.

 

▲ 김용필 소설가

 며칠 전 옛 직장 친구들의 모임이 있었다. 여수에 사는 친구가 돌상어를 삶아 가지고 왔다.

 

껍질을 벗겨 삶은 상어를 보고 모두 놀랐다. 처음 보는 횟감이었다.

 

이 돌상어는 내가 잡아서 손질 한 것이다.”

정말 상어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상어야

 

내가 추억의 생선을 보고 말했다.

 상어를 회로 먹는다고?”

 

다른 친구가 물었다.

그럼, 얼마나 귀하고 맛있는 생선인데.....”

어떻게 먹는 거니?”

썰어서 막걸리 초고추장에 찍어서 먹는 거야?”

 

친구는 신나게 말했다. 구미가 당겼다. 돌상어는 횟감으론 최고다. 예전엔 조릴 할 줄 몰라서 잡으면 모두 버렸다. 그런데 조릴 해 놓으면 세상에 이보다 맛있는 횟감은 없을 것이다. 껍질이 두껍기에 끓는 물에 삶아서 호박잎으로 문질러 껍질을 벗겨 막걸리와 같이 먹으면 일품이다.

 

전남도에선 홍어가 최고라는데 상어도 즐겨먹니?”

 

다른 친구의 질문에 여수에서 온 친구는 한마디 던졌다.

 

홍어는 전라도 서쪽에서 먹고 동쪽에선 상어를 먹는다. 돌상어 고길 홍어에다 비기니? 홍어는 보통 사람들이 먹지만 돌상어는 고급 생선 생선이라 아무나 못 먹어. 너희들이 생각나서 내가 지고 왔다니까.”

 

역시 돌상어 찜에 막걸리 맛은 일품이었다.

난 옛 추억이 젖었다. 옛날, 고향 여수에서 많이 먹던 생선이었다.

 

, 고맙다. 이런 고급 식품을 먹게 해 줘서.”

그러니까, 여수로 와. 여수로 와서 맛있는 해산물을 먹으며 같이 살자고.”

 

친구는 마냥 신나 있었다. 얼굴도 뿌옇게 살집이 좋았다.

 

, 여수로 내려 갈 땐 불안해하더니 지금은 신수가 훤하구나.”

, 난 행복해, 말년에 최고의 인생을 즐기는 것 같아.”

 

친구의 말엔 힘과 윤기가 넘치고 있었다. 그는 정년 후 서울에서 우울증에 걸려 무력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 그가 갑자기 3년 전에 여수로 귀촌을 하였다.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정년 후엔 바쁜 일상에서 갑자기 한가해진 무료함 때문에 공황 증으로 고통을 받는다.

 

그래서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가지만 그것도 여유 있는 사람 말이지 쉽지가 않다. 물론 경험 없이 새로운 일거릴 마련했다가 쫄딱궁 망하는 친구도 있고 평생 모은 퇴직금을 자식들에게 홀랑 빼앗겨 알거지가 된 친구도 있다.

 

그나마 마음 강하게 먹은 친구들은 서울을 떠나 교외나 시골에 땅을 사서 농사를 짓기도 하였다. 노년의 고독을 일에 묻혀 잡념을 버린다고 하지만 농사일이란 보고는 안 할수 없는 무리한 노동이라서 몸이 오히려 망가지기사 일수이다. 그래서 귀촌을 포기하고 돌아오는 친구도 있었다.

 

귀촌이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라서 특히 노인들에겐 생각대로 쉽지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그는 과감하게 단안을 내리고 여수로 간다는 것이었다.

 

여수에 가서 뭐하면서 살 건데?”

이 나이에 무슨 일을 하겠어? 바다낚시나 하면서 놀아야지.”

적응이 될까?”

글쎄, 그것이 문제야.”

하던 친구가 생면부지의 여수로 가서 삶의 활력소를 찾아서 온 것이다. 이번 모임은 전국에 흩어져 있던 친구들이 모였다.

 

여수친구가 가지고 온 돌상어 사시미 덕에 모임이 즐거웠다, 보아하니 각기 나름대로 신나는 노년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불행해진 친구도 있었다.

 

그는 여수에 가서 문어 잡이 배에서 알바를 한단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고 건강과 취미로 하는 알바인데 신나게 일하며 돈도 벌고 넓은 바닷바람을 쏘이며 즐기기에 건강아 아주 좋아졌다는 것이다.

 

세월은 어쩔 수 없다. 먼저 기백이 사라지고 소심해진다. 젊을 땐 친구를 만나면 잘나가는 이야기, 재산자랑, 출세자랑, 아내 자랑을 하는 친구들이 가장 부러웠다. 그러나 지금 노인이 되어 그런 이야길 했다간 정신병자 취급을 당한다.

 

잘 났다는 이야긴 쏙 들어갔지만 잘 살아온 표적은 역시 자식이 잘 된 모습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식 자랑도 식상하다. 오직 건강을 화두로 한 이야기가 공감을 산다. 이제는 건강한 친구가 가장 부럽다.

 

그런데 여수에서 온 친구는 노년에 더욱 활기차 있었다.

 

너희들, 여수로 와라, 우리 같이 식도락을 즐기자고, 난 식도락에 취해 산단다. 아침에 배를 타고 거문도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온다니까, 파릿한 삼치 회에 소주 맛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 거문도 삼치 회를 먹는 것은 신선놀음을 즐기자고.”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뻥이 너무 센 것 같지만 그것이 사실이었다. 여수는 내가 살던 고향이라서 안다. 그런데 그 옛날엔 한시라도 떠나고 싶었던 고향이었다. 바다와 힘든 싸움이 싫었던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출렁이는 바다, 갯벌에서 해산물을 줍던 힘든 일들이 너무 싫었고 사시장철 보는 출렁이는 파도가 싫었다.

 

가난한 시절에 갯벌에 나가면 돈 안들이고 조개나 해초, 물고기를 잡아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잘 먹지 못했다. 갯일로 해산물을 얻으며 한 푼이라고 벌려고 시장에 내다 파는 어머니가 야속했다. 해산물이 많은데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고생만 했던 시절이다. 아무튼 갯일은 돈이 되었지만 힘들었다.

 

아무튼 여수 사람들의 생활이 넉넉했던 그 추억의 옛 이야기를 들어본다.

 

여수에 가서 돈 자랑 하지마라.

 

여수에 가면 돈 자랑 하지 말라고 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수는 돈 많은 고장이다. 그런다고 재벌이 많은 것은 아니다. 재벌은 없고 보통 사람들이 풍족하게 산다는 것이다. 여수에 돈이 모이는 이유가 있었다.

 

여수는 남해안의 중심도시로 서울로 직결하는 철도가 있어서 교통이 좋아서 남해안 수산물이 모두 여수로 몰려들었다.

 

 1950년대는 삼치 잡이 어업으로 돈이 쏟아졌다.

 

1950년대는 배타는 일자릴 찾아 전국에서 젊은이들이 여수로 모여들었다. 한국 전쟁 후 일자리가 없었는데 여수에는 거리마다 벽이나 전봇대에 어부구함이란 구인광고가 맥질을 했다.

 

그만큼 어업이 성해 어부가 부족했고 어부는 인기 직업이었다. 마치 중동으로 일자릴 구하려 가는 노동자처럼 어부 지망생이 모여 들었다. 그 이유는 거문도 앞바다에서 잡은 엄청난 삼치를 일본으로 수출하면서 거문도 어업이 성행했고 이곳에서 잡은 삼치가 여수로 와서 일본으로 전량 수출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젊은이들 사이엔 배타는 친구가 잘 살았다. 그 바람에 엄청난 돈이 여수로 쏟아졌다. 일본인들은 삼치 사시미를 최고로 여겼다.

 

 1960년대는 밀수의 천국으로 돈이 쏟아졌다.

 

한국 전쟁 후 2차 산업이 전혀 없어서 공산품을 외국에서 수입하던 시기였다. 일본과 홍콩의 상인들이 밀수선을 끌고 여수 앞바다로 와서 장사를 하였다. 남해안에 밀수 무역선들이 진을 치면서 선상 무역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당시 자유당 정부는 앞장서서 밀수 무역을 부추기고 있었다. 이 바람에 여수는 밀수의 천국이 되었다. 여수 주민들은 논 팔고 밭팔아서 밀수에 투자 하였다. 여수 인구가 10만인데 밀수하는 가구인구가 4만에 이르렀다.

 

41기란 말이 있다. 3번 잡히고 1번만 성공하면 노다지를 건진다는 말이다.

 

밀수품은 고가의 상품들이다. 황금괴. 녹용, 고급시계. 고급옷감, 보석류가 주 상품이었다.

 

여수에서 쾌속정을 이용하여 일본 대마도와 홍콩으로 직접 거래하는 자도 있었다. 여수를 드나드는 배는 거의 어창에 비밀 창고를 만들어 밀수품을 숨겨왔다.

 

섬이나 바닷가에 밀수품이 숨겨져 있었다. 운 좋으며 횡재를 만난다. 이런 밀수품을 발견하여 돈을 번 사람도 많고 전문적으로 모래사장을 파헤치고 다니는 사람도 많았다.

 

대학생들도 수입이 톡톡했다. 밀수품을 날라다 주고 학비를 벌곤 하였다.

 

학생, 이 가방 말이야, 서울로 가져다주게, 서울역에 가면 주인이 나타날 거야.”

얼마 줄 건데요?”

섭섭하지 않게 줄 테니 운반만 해줘.”

그래서 학비와 용동을 벌곤 하였다. 따라서 여수에 돈이 넘쳐났다.

 

그런데 5.16 혁명이 나면서 망국의 밀수 근절이란 법령이 발표되어 군경이 밀수 소탕전을 벌려서 여수의 가옥과 배에 숨겨진 밀수품을 모조리 잡아냈다.

 

여수 선창에 압수된 밀수품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었다. 경찰은 이 밀수품을 모두 불태워버렸다. 밀수 때문에 죽는 사람도 많았다. 수색이 심해지자 어느새 밀수꾼들은 자취를 감추어 벼렸다.

 

 1970년대는 쥐치포와 해조류 가공 수출이 돈을 쏟아냈다.

 

쥐치포 생산 고장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면서 부터다. 여수에 먹지 않고 내버리는 생선이 있었다. 쥐치였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이 쥐치포를 좋아한다. 여수의 어부들은 쥐치를 잡아서 포를 떠서 삶아 말려 쥐치포를 만들어 전량 수출을 하였다.

 

전국에서 잡은 쥐치가 여수로 몰려들었고 여수 가공 공장에서 쥐치포를 만들어 일본으로 수출을 하면서 돈이 쏟아져 내렸다. 엄청난 돈이었다. 쥐치 공장에서 주문 생산을 대지 못할 정도였고 아낙네들의 일손이 없어서 쩔쩔맸다.

 

 ○ 1980년대는 여수공단에 중화학 공장이 서면서 돈이 쏟아졌다.

 

1970년대부터 광양만 여수 공단에 중화학공업 단지가 생기면서 여수의 경제는 한층 나아졌다. 지금은 수산업의 중심 어항이 공업도시와 관광 레저 산업으로 바뀌면서 여수의 어업은 줄어들었으나 산업 단지에서 나오는 세금으로 도시는 윤택해졌다.

 

여수 산업단지에 근무하는 기술자들의 평균 연봉이 1억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여수에선 마음만 먹으면 쉽게 일자릴 구해서 실업자가 별로 없다.

 

 ○ 여수에서 살고 싶다

 

섬과 바다, 갯벌, 따뜻한 기후, 여수는 바다의 낭만을 즐길 수 있는 참 아름다운 고장이다. 노후 생활의 힐링 장소로 여수만 한 곳이 없다. 여수는 물이 좋아서인지 예부터 장수촌으로 알려져 있다.

 

다도해의 중앙에 위치하여 해양과 섬 문화를 쉽게 즐길 수 있고 기후가 따뜻하여 활동이 편하며 서울과 교통이 좋고 물가가 싸고 먹을거리가 풍부하여 웰빙 할 수는 최적의 장소라는 것이다.

 

싸고 신선한 해산물이 식도락의 향미를 만끽 할수 있다, 게다가 여수는 일자리가 많아 젊은들이 선호하는 고장이며 힐링의 노후를 즐기는 노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곳이란 통계가 나와 있다.

 

여수에서 살고 싶다. 여수에 사는 친구가 부럽다.

한바탕 그렇게 떠들고 여수 친구는 머잖아 친구들을 초대 한다며 KTX를 타고 여수로 내려갔다.

 

▲ 여수 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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